故 李회장 3000억 기부로 시작
서울대어린이병원 등서 진단·치료
202개 병원 네트워크 형성까지
급성림프모구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김다엘(11)군은 지난해 4월 병이 재발해 항암치료를 다시 받게 됐다. 2018년 발병 이후 또 한 번 닥친 시련이었지만, 다엘이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미세잔존암(NGS-MRD) 검사를 이어가며 지난 6월에는 서울대병원에서 환자의 세포에서 T세포를 분리해 치료하는 고가의 ‘CAR-T’ 치료도 받았다. 9회의 검사에 들어간 비용만 400만∼500만원. 이를 포함한 아이의 항암치료 비용은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에서 지원됐다.
“요리와 커피 내리는 것을 좋아해요. 두부 조림과 만두를 잘해요.”
21일 오후 서울대어린이병원 CJ홀에서 열린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 함께 희망을 열다, 미래를 열다’ 행사에 참여한 김다엘군은 힘든 내색 없이 자신의 꿈과 희망을 내비쳤다. 다엘이와 함께 행사에 참석한 윤산, 명하율군도 로봇 만들기와 첼로 연주의 즐거움에 대해 얘기하며 들뜬 모습을 보였다. 소아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었지만 힘겨움과 눈물보다는 희망과 감사함을 전했다.
2021년 고 이건희 회장의 기부로 시작된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을 통해 그동안 진단과 치료가 어려웠던 소아 환자들에 대한 지원이 이뤄진 덕이다.
총 3000억원의 기부금은 소아암(1500억원), 소아희귀질환 진단(600억원), 전국 네트워크 기반 코호트 공동연구(900억원)에 지원됐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총 9521명의 소아암·희귀질환 환자들이 진단을 받았고, 3892명이 치료받았다. 또 2만4608건의 코호트 데이터가 등록됐으며, 전국 202개의 의료기관과 1504명 의료진의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이번 사업의 지원을 받은 환아 가족들은 인터뷰 영상을 통해 고마움을 전했다. 단장증후군을 앓는 여아와 삼출 유리체망막병증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의 부모들은 “가족에게 꿈을 주고 미래를 열어줬다는 것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다”며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인데, 아픈 아이들을 고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얘기했다.
의료진도 기부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희귀질환 연구에 도움이 돼 아이들의 진단 방랑을 끝내고 전국적으로 표준치료를 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채종희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는 “희귀질환에 진단은 곧 치료다. 토털 케어 시작의 90%를 지원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석희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이건희 기금을 통해 유전성 장염의 우리나라 소아 코호트를 만들었고 그 연구를 통해 유전성 장염을 치료할 수 있는 두 가지의 신약 특허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성과를 밝혔다.
이날 행사장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을 비롯해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 김영태 서울대병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 회장은 참석자들과 함께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1층에 있는 고 이건희 회장의 부조상을 관람했다. 부조상 아래에는 ‘모든 어린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보살피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고인의 유지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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