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드론이 전쟁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크기와 성능은 다양하지만, 탐지가 어려운 드론의 공격은 치명적 위력을 발휘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은 전장에서 전차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차량을 파괴한다. 탄약고, 지휘소, 방공망, 공군기지 등을 공격할 수 있다. 특정 군인을 겨냥한 암살도 한다. 작전 지역을 정찰하면서 포격을 유도하고, 지상군 공격·방어작전을 지원한다. ‘드론 전쟁’이란 말이 나오는 대목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다. 드론을 요격하고자 방공망을 가동하면 가성비가 맞지 않는다. 방치하면 지상에 피해가 발생한다. 드론 대응 체계를 따로 구축할 수 있지만, 값이 싸지 않다. 비용 대비 효과와 피해 사이에서 딜레마가 생긴다.
‘값싼 드론을 잡으려면, 요격 수단도 저렴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비싼 지대공미사일을 대신해 드론을 요격하는 ‘킬러 드론’이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사일 대응은 한계…‘요격 드론’ 주목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1일 X(옛 트위터) 계정에 러시아 정찰 드론 격추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전장에 오를란(Orlan)-10, 잘라(Zala) 무인정찰기를 띄웠다.
비행 중인 무인정찰기의 후방으로 우크라이나 요격 드론이 접근하더니 충돌했고, 화면이 꺼졌다. 이같은 사례가 30초 동안 여러 차례 등장했다. 우크라이나가 새롭게 만든 공대공 드론이 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리퍼나 글로벌호크 등 일부 대형 기체를 제외한 무인기는 크기가 매우 작아서 레이더 탐지가 어렵다. 하지만 전장에서 일단 포착하면 요격이 가능하다.
전투기는 미사일이 날아오면 전자전 장비와 섬광탄 등을 통해 회피하지만, 무인기는 자체 보호 능력이 미약하다. 탐지·식별·추적이 가능하다면 요격도 쉽게 할 수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지난 11일(현지시간) X에 공개한 영상에는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산 스팅어 휴대용 지대공미사일로 이란산 샤헤드 자폭 드론 3대를 격추하는 모습이 담겼다. 샤헤드 자폭드론은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 전력망 등을 타격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하지만 방공망을 드론 요격에 집중하면 나중에 날아올 순항·탄도미사일과 전폭기 공격을 막아내기 어렵다.
러시아군은 샤헤드 같은 저가 드론을 계속 띄워 우크라이나 지대공미사일을 소모시키고 방공부대의 피로를 높인 뒤 순항·탄도미사일 발사 또는 전폭기에서의 활공폭탄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휴대용 단거리 지대공미사일이 있지만, 드론 요격에 집중하면 헬기나 저고도 침투 항공기 기습을 저지하는데 필요한 미사일 재고가 감소할 수 있다.
드론이나 미사일 공격이 장기간 거듭될 때 요격미사일 재고 관리는 중요한 변수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기습으로 전쟁이 발발한 이래 2만 개가 넘는 로켓이 날아들었다.
초기에는 아이언돔과 다윗의 돌팔매, 애로 미사일로 구성된 방공망으로 저지했지만, 끊임없는 공격에 요격미사일 재고가 급감하면서 이란이 쏜 미사일 중 일부가 방공망을 뚫고 낙하했다.
가성비 문제도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쓰는 이란산 자폭드론은 생산비가 2만 달러(2500만원)정도지만 이를 요격하는 미국산 나삼스 지대공미사일 체계는 50만 달러(6억3000만원)에 이른다.
우크라이나군이 투입한 드론 요격 드론은 이같은 문제를 풀어준다. 민수용 드론을 개조하거나 상업용 부품으로 저가 드론을 만들어 띄운 뒤 적 무인기와 충돌하면 된다.
활주로가 없어도 어디든 투입할 수 있고, 비용이 매우 저렴해 1회용으로 써도 부담이 없다. 순항·탄도미사일과 전폭기 저지에 쓸 요격미사일 재고 감소도 최소화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개전 초기부터 드론 요격 드론 개발을 추진해왔다. 러시아 자폭 드론이 우크라이나 내륙 곳곳을 타격하고, 정찰 드론이 포격을 유도하면서 지상군 피해가 누적됐다.
현재 우크라이나가 개발 중인 요격용 드론은 ‘스팅’(sting)이다. 키이우 포스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포탄처럼 생긴 스팅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도시를 향해 매일 최대 80대의 샤헤드 자폭드론을 발사하면서, 고가의 요격미사일 소모량을 최소화하고자 개발됐다.
표준 쿼드콥터를 기반으로 하는 스팅은 1인칭 시점(FPV) 드론으로 시속 160㎞ 속도로 고도 3000m에 도달할 수 있다.
중앙에 길쭉한 돔 모양의 탄두가 고정되어 있고, 그 위에 카메라가 있다. VR 고글로 지상에서 원격으로 드론을 제어하며 표적을 조준한다. 우크라이나 측은 드론이 목표물을 식별·포착하는 능력을 높여줄 인공지능(AI)도 개발 중이다.
러시아도 드론을 요격하는 드론을 만들고 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의 레드 라인(Red line)사는 무인기를 요격하기 위해 탑재물을 폭발시키는 1회용 드론 보간(Vogan)-9SP를 공개했다.
쿼드콥터인 이 드론은 시속 200㎞까지 가속할 수 있다. 45도 각도로 설치된 발사대에서 이륙해 목표물에 접근, 마지막 순간에 자체 유도 시스템으로 방향을 잡는다.
목표물에 매우 가까워졌다고 판단되면, 조종사는 전송받은 카메라 영상을 통해 폭파 명령을 내려서 적 무인기를 파괴한다. 현재 시속 250㎞ 이상의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성능개량형도 개발 중이다.
보간 드론의 등장은 러시아군 전술에 변화를 예고한다. 러시아군은 전자전 장비나 방공망, 보병의 기관총과 소총, 심지어 돌멩이와 몽둥이까지 사용해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을 저지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드론이 북극권 무르만스크부터 남부 흑해 연안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계속 타격하는 것에 대응하려면 요격 옵션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직접 파괴 방식도 그 중 하나다.
◆국내서도 ‘요격 드론’ 만드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의 위력이 입증되면서, 세계 각국에서도 드론을 요격하는 드론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미국은 최근 수년 동안 드론을 드론으로 파괴하는 방안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중동에서 드론을 사용한 위협이 커졌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와 더불어 중국과의 충돌에 대비하려면 드론 대응책을 더욱 철저히 갖춰야 한다는 인식에서다.
미국 레이시온이 생산하는 코요테(Coyote)는 공중충돌 또는 근접 후 자폭 방식으로 다수의 군집드론을 제압하는 드론이다.
드론에는 탐색기와 폭약을 장착하고 실제로 드론을 식별·추적해 파괴하는 것은 지상통제장비의 몫이다.
미국 안두릴사가 개발한 로드러너(Roadrunner)-M은 방공망에 고정익 무인기가 탐지되면, 복수의 로드러너-M이 발사된다. 발사된 로드러너-M은 적 무인기와 부딪혀서 파괴하며, 예비 로드러너-M은 역추진 엔진으로 지상에 착륙한다.
유럽에서도 이와 유사한 무기가 등장했다. 미티어 장거리 공대공미사일 등을 만드는 MBDA는 지난 7월 영국 판보로 에어쇼에서 소형 쿼드콥터에 대공무기를 장착한 형태의 요격 드론을 소개했다.
MBDA의 스카이 와든 드론 대응체계에 의해 이륙한 요격 드론은 다가오는 적 무인기를 향해 날아가서, 최적의 위치를 찾기 위해 스스로 움직인다. 표적에 도달하면 지향성 탄두를 폭발시킨다.
국내에서도 요격 드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니어스랩은 지난 7월 직충돌형 고속비행 드론 카이든(KAiDEN)이 시속 60㎞로 비행하는 고정익 드론 격추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카이든은 레이더에서 목표 드론의 이동정보를 받아 추적을 시작, 사전에 설정된 요격 가능 구역에서 충돌 가능한 거리에 도달하자 고속 비행으로 충돌해 표적 드론을 격추했다고 니어스랩은 설명했다.
카이든은 방공 레이더 시스템과 연동이 가능하며, 적 드론이 중요지역에 접근하기 전에 선제 타격을 통해 효과적인 방어가 가능하다. AI 기술을 활용해 정밀 유도 비행이 가능하다.
사전에 요격 구역을 설정해 공중충돌 후 잔여물 추락에 따른 지상 피해도 막을 수 있다.
드론의 성능이 계속 향상되고 쓰임새도 확대되면서 드론의 위협에 따른 대응책 마련도 강조되고 있다. 전자전 등의 방법이 있지만, 직접 파괴하는 것은 효과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높은 위력을 지닌다.
요격 드론은 가성비 측면에서 지대공미사일보다 우수하고, 작전에서의 융통성도 적지 않다. 따라서 드론으로 드론을 공격하는 기술은 향후에도 사용처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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