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이란 제목의 기획 전시회가 열린다. 앞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달 9일까지 관객과 만났던 같은 내용의 전시회가 이번엔 부산으로 무대를 옮겨 연말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북미 원주민의 공예품, 사진, 회화 등 150점 넘는 작품이 전시물이다. 미국 덴버박물관이 1925년부터 수집해 온 원주민 관련 소장품 1만8000여점의 일부라고 한다. 덴버박물관이 위치한 미 중서부 콜로라도주(州)는 수천년 전부터 다양한 원주민 부족들이 거주해 온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덴버박물관이 원주민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런 역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오늘날 ‘인디언’(Indian) 하면 당연히 인도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전시회 제목처럼 북미 원주민이 ‘인디언’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0∼1506)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곳을 인도라고 착각한 것이 근본 원인이다. 막연히 ‘대서양 건너에 인도가 있다’고만 여긴 콜럼버스는 그때까지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까맣게 몰랐다. 자기네가 첫 발을 내디딘 육지가 인도가 아니란 사실을 알고서야 비로소 유럽인들은 이 거대한 땅덩이에 ‘신대륙’이란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그 원주민은 그냥 ‘인디언’으로 남아 오랫동안 멸시와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하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원주민들은 수천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구석진 곳으로 밀려났다. ‘손님’인 백인이 ‘주인’인 원주민을 내모는 형국이니 말 그대로 주객전도라 하겠다. 할리우드 스타 케빈 코스트너가 감독·주연을 맡은 영화 ‘늑대와 춤을’(1991)은 원주민들이 백인들의 탄압 속에 쇠락해가는 모습을 생생히 그렸다. 미국에서 원주민이 시민권을 얻은 것은 1928년의 일이다. 21세기 현재 미국의 원주민은 약 50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그중 100만명이 아직도 보호 구역(Reserve)에 거주한다. 그나마 명칭이 ‘인디언’이란 엉뚱한 이름에서 ‘북미 원주민’(Native American)으로 의젓하게 바뀐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 애리조나주를 찾아 원주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과거 연방정부가 “원주민 자녀들을 문화적으로 동화시켜야 한다”며 기숙학교를 세우고 강제로 부모와 헤어지게 만든 뒤 학교에 수용한 조치를 사죄한 것이다. 1819년 시작한 이 정책은 1970년까지 150년가량 계속됐는데, 그 기간 원주민 아이들은 부모와 생이별을 겪어야 했다. 학교에서 영어 말고 부족 언어를 쓰면 구타 등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당하기 일쑤였으며 심지어 학생이 목숨을 잃은 사례도 있다. 바이든은 이를 “우리 영혼에 대한 죄악이자 미국 역사의 오점”으로 규정한 뒤 “우리가 저지른 일에 대해 미국 대통령으로서 공식적인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과거사 청산이 간단치 않은 사안이란 점은 우리나 미국이나 똑같은 듯하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