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 학부모들 늘봄 개념 혼선 빚자
전담 인력, 매일 소통… 궁금증 해결사로
“수업 줄어든 덕분… 프로그램 정착 온 힘”
교사들은 “업무 줄어 수업 집중” 반색
행정업무 이관 등 시교육청 지원 사격
2025년엔 교사 대상 ‘늘봄지원실장’ 선발
“교육 기획 경험 쌓고 행정 부담 사라져”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놀이체육은 단연 인기 수업이다. 학교 관계자는 “다양한 놀이식 신체활동으로 협동심을 기르고 신체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업이 진행 중이던 때는 학교의 정규수업은 이미 끝난 시간이었다. 하지만 양정초에선 1학년 82명 중 81명이 방과후학교에 남아 체육, 음악, 미술, 코딩 등 다양한 수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높은 늘봄학교 참여율 뒤에는 전담교사인 박위란 교사의 노력이 있다. 박 교사는 늘봄학교 전담 기간제 교사로, 올해 2월 양정초에 왔다. 30년 넘는 교직 생활 후 퇴임한 ‘베테랑’ 교사인 그는 입학 전 1학년 모든 신입생의 학부모 한명 한명에게 전화를 걸어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문의에 답했다. 온종일 전화를 돌리고 나면 목이 쉬기 일쑤였다.
박 교사의 진심 어린 설명 끝에 대부분의 학부모가 학교를 믿고 아이들을 맡겼고,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2학기에도 거의 모든 1학년이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 교사는 “맡은 수업이 적은 대신 늘봄학교 업무를 전담해 세심하게 학부모와 소통할 수 있었다”며 “다른 업무가 많았으면 프로그램을 이끌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정초 사례는 전담인력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교사들은 늘봄학교 정책이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도 만족하는 정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전담인력이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의 방과후·돌봄 정책이 기존처럼 교사를 ‘갈아 넣는’ 식으로 운영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늘봄학교 실무인력으로 교사 부담 경감
맞벌이가정에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은 설렘과 동시에 큰 위기다. 오랜 시간 돌봄이 제공되던 어린이집·유치원과 달리 초등학교 1학년은 하교 시간이 오후 1∼2시로 빨라서다. 자녀 돌봄 때문에 퇴직을 고민하는 이들도 많아 초등학교 1학년은 ‘워킹맘의 무덤’이라 불리기도 한다.
늘봄학교는 이런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나왔다. 기존 정책과 가장 큰 차이는 ‘원하는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존 돌봄교실은 맞벌이 등 이용 대상이 제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해 추첨으로 대상자를 선발하는 곳이 많았다. 늘봄학교는 궁극적으론 초등학교 전 학년에게 ‘떨어질 걱정 없이’ 교육·돌봄을 제공한다는 목표다. 우선 도입 첫해인 올해 1학년에 이어 내년 2학년, 2026년부터는 3학년 이상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하교 시간이 빠른 1학년에겐 매일 2시간의 맞춤형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한다. 29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국 초등학교 1학년의 82.7%인 29만3000명이 초1 맞춤형 프로그램 등 늘봄학교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내년부터는 2학년에게도 무료 맞춤형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빠른 하교로 곤란을 겪던 학부모들에게는 반가운 정책이다.
과거 교직에 있을 때 돌봄 정책 강화 필요성을 느꼈다던 박 교사도 늘봄학교 취지에 공감해 기쁜 마음으로 전담교사에 지원했다. 그러나 업무가 쉽지만은 않았다. 올해 시작된 사업이다 보니 ‘돌봄교실’, ‘방과후학교’ 등 기존 단어가 익숙한 학부모들에겐 늘봄학교 개념도 낯설어 박 교사는 매일 전화를 붙잡고 맞춤형 무료 프로그램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야 했다. 학기가 시작된 뒤에도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문의에 모두 응할 수 있었던 데는 업무에 투입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현재 주 15시간만 수업하고, 나머지 시간은 1·2학년 늘봄학교 업무에 쏟고 있다. 박 교사는 “3월엔 주 15시간 수업도 부담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바빴지만 점차 업무가 안정됐다. 이제 학부모 문의도 줄었다”며 “학부모들과 소통하면서 수요가 많은 수업을 늘리는 등 요구사항을 계속 반영해 학부모 만족도도 높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다른 교사들처럼 수업을 많이 하면서 늘봄학교 업무도 떠안았다면 이렇게 신경 쓰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국 학교에 ‘늘봄지원실장’ 배치
실제 기존 방과후학교·돌봄교실 업무는 교사들에게 작지 않은 부담이었다. 강사 채용이나 회계처리 등이 모두 교사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양정초에서 담임을 하면서 방과후 수업 업무도 담당하는 교사 A씨는 “예전엔 강사 면접이나 월급 지급, 환불 업무 등도 했다. 이게 교사의 역할인가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늘봄학교가 도입되면 행정업무가 더 늘까 봐 걱정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초 늘봄학교 도입을 계기로 부산시교육청에서 강사 채용 등 업무를 교육지원청 중심으로 전환했고, 늘봄학교 전담교사가 오면서 시름을 덜었다. 이달 초에는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늘봄교무행정실무사도 학교에 배치돼 A씨가 맡았던 행정업무를 이관 중이다.
A씨는 “걱정과 달리 오히려 전보다 업무가 줄었다”며 “예전엔 학부모 문의도 많았는데 이젠 관련 문의가 전담교사·행정실무사에게 가 수업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A씨가 방과후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 있게 된다. 교육부는 규모가 큰 학교는 학교마다, 소규모 학교는 2∼3곳당 1곳씩 늘봄학교 관련 업무를 주관하는 ‘늘봄지원실’을 만들고 늘봄지원실장을 배치할 예정이다. 늘봄지원실장은 방과후 수업·돌봄 업무를 가져가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A씨처럼 담임을 하면서 방과후 업무도 하는 교사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늘봄지원실장은 각 교육청이 현직 교사 중 선발한다. 전국 선발 인원은 초등학교 1452명, 특수학교 42명으로 현재 채용절차가 진행 중이다. 선발된 교사는 2년 동안 교육연구사 신분을 부여받고, 늘봄학교 관련 업무만 하다 임기 후 교원으로 복귀하게 된다.
교사들 사이에선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늘봄지원실장은 교육기획 업무를 할 수 있는 데다가 일부 교육청은 연구점수 등 혜택을 주기도 한다. 대전에서 늘봄지원실장 지원을 고려 중이라는 한 초등학교 교사는 “평소 하던 일을 떠나 교육행정 경험을 쌓을 기회여서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천홍 교육부 교육복지늘봄지원국장은 “늘봄지원실 구축으로 내년부터 교사의 행정업무 부담이 사라지고, 학교별 수요에 맞는 특색 사업 추진 등도 용이해져 프로그램 질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21일 양정초를 찾아 늘봄학교 수업을 둘러보고 교사, 학부모들과 간담회를 가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늘봄학교가 교사들에게 부담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부총리는 “부산시교육청에서 행정지원본부를 만드는 등 교사의 업무 경감 노력을 많이 했는데, 교육부에서도 이런 좋은 사례가 전국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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