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취득 이후 유상증자로 상환 계획
미리 알고 진행했다면 부정거래 가능성”
실제 고려아연서 주주들에 알리지 않아
금감원서 유상증자 계획 정정 요구 낼 듯
“신주 발행 연내 어려울 수 있을 것” 관측
주가 이틀 연속 급락 99만8000원에 마감
“최악 코리아디스카운트 사례” 지적 나와
금융감독원이 고려아연의 기습적인 유상증자 계획에 불법 소지가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이 종료된 지 일주일 만에 이사회가 유상증자를 발표했는데, 이를 미리 계획해놓고 주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고려아연의 주가는 유상증자 발표 후 연이틀 곤두박질쳤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31일 자본시장 현안 브리핑을 열고 “고려아연 이사회가 차입을 통해 자사주를 취득해서 소각하겠다는 계획, 그 후에 유상증자로 상환할 것이라는 계획을 모두 알고 해당 절차를 순차적으로 진행했다면 기존 공개매수 신고서에는 중대한 사항이 빠진 것이고, 이는 부정거래 소지가 다분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지난 23일까지 주당 89만원에 자사주 매입을 진행했는데 일주일 후인 30일 발행주식의 20% 수준인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일반공모 형태로 신규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하는 자금 2조5000억원 중 2조3000억원을 자사주 매입 등에 사용된 차입금 상환에 쓰겠다고 밝혔다. 결국 영풍·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빌린 돈을 주주들의 주식 가치를 희석해 갚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금감원은 고려아연이 이 같은 계획을 사전에 준비하면서 주주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 11일 자사주 매입을 위한 공개매수 신고서에 “공개매수 이후 재무구조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지 않다”고 공시했다. 그러나 30일 유상증자를 위한 증권신고서에서는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이 이달 14일부터 유상증자를 위한 실사를 진행했다고 기재했다. 금감원은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이날 고려아연 유상증자와 자사주 매입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현장검사에 나섰다.
금감원은 고려아연의 불법 소지를 파악하면 유상증자 계획의 효력이 발생하는 11월14일 전에 정정요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의 신주 발행은 연내 이뤄지지 못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함 부원장은 “불공정거래가 확인되면 신속한 처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에 이첩할 것”이라며 “증권신고서 정정요구도 필요하면 계속하고, 심사·조사·검사·감리 등 법령상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래에셋증권도 이를 알고도 방조했다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계획에서 밝힌 ‘특별관계자 3% 청약제한룰’도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주주들이 3%를 초과해 청약할 수 없도록 물량을 제한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으나 특별관계자로 제한한 것은 사례가 없어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봤다.
고려아연 주가는 유상증자 충격에 전날 하한가(29.94% 하락)에 이어 이틀 연속 급락하면서 황제주(주당 100만원을 넘는 주식) 자리에서 내려왔다. 고려아연 주가는 이날 7.68% 하락한 99만8000원을 기록했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고려아연의 현재 주가가 펀더멘털(기초체력)과 연관돼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주주들이) 큰 손실을 볼 확률이 꽤 높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금융권에서도 고려아연의 유상증자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이번 고려아연 이사회의 결정은 일반주주 입장에서 황당하고 회사 경영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낮추는 상황을 낳았다”며 “이번 이사회에서 일부 이사들은 불참했는데 선관주의에 걸릴까 봐 유상증자 결정을 회피한 것 같은데 이것은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독립 투자 리서치 플랫폼인 ‘스마트카르마’의 더글라스 킴 연구원도 이날 ‘2.5조원의 유상증자 계획은 최악의 코리아디스카운트 사례를 선보이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고려아연 사례를 국내 증시 저평가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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