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일상 점령하는 정치 메시지 조정해야
선거의 해라 불리는 2024년, 한국과 인도, 유럽연합과 일본에 이어 이제 미국의 차례다. 선거란 국정을 책임질 사람과 세력을 다수의 후보 가운데 모든 시민이 참여해 고를 수 있는 민주주의의 축제다. 평소와 달리 권력자들이 고개 숙여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려 하니 독재 국가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호사(豪奢)가 아닌가. 게다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잔치로 나라가 하나 됨을 만끽하는 기회다.
그런데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미국인 대다수는 큰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소식이다. 지난주 공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가운데 70% 이상이 선거로 인한 불안감이나 우울한 감정을 토로했다. 실제 이번 미국 대선은 폭력적 언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진영이 강렬하게 충돌하는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이면서도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하는 ‘멍청한’ 리즈 체니에게 “총을 겨눈다”는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해리스는 트럼프를 파시스트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선거는 축제이고 잔치지만 동시에 경쟁이고 투쟁이다. 현대 사회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잘 알듯 경쟁은 스트레스의 가장 큰 근원이다. 깔끔하게 규칙을 지키고 예의를 갖춘 경쟁도 스트레스인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난폭한 투쟁이 되면 불안감까지 더한다. 게다가 이번 미국 선거는 패자의 진영이 결과에 승복할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미래의 불안감이 우울한 증상까지 초래하는 모습이다.
축제나 잔치로서 선거는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는 순기능이 강하다. 경쟁과 투쟁으로서 선거는 나라를 분열시키고 시민에게 큰 스트레스와 불안감, 우울을 초래한다. 선거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할 수 없기에 민주 국가의 시민은 결국 필연적으로 심리 대가를 치러야 하는 셈이다. 힘들다고 삶을 포기할 수 없듯 스트레스라는 대가를 피하려고 민주주의를 버릴 수는 없다. 다만 민주주의와 선거의 게임을 잘 조정하고 다루는 지혜를 습득해야 할 터다.
심리학자들은 정치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심리적 부담과 불안을 일으킨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24/7’ 매일 쉬지 않고 정치 뉴스에 함몰되는 일은 피하라고 충고한다. 정치에서 벗어나 일상을 누리는 일이 결정적이라는 말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특정 세력을 지지할 수는 있으나 맹신자가 되지는 말라고 당부한다. 맹신이란 이성을 마비시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미국만큼이나 양극화와 진영논리의 충돌이 심각한 상황이다. 일단 원하지 않는 시민도 정치적 메시지와 구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도심 거리에는 주말마다 소수의 시위대가 교통을 마비시키고 고성의 스피커로 시민의 평화로운 삶을 깨뜨리는가 하면, 분노와 증오를 유발하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다.
선거 시즌이 아니더라도 시민의 일상을 점령하는 정치 메시지는 이제 적절히 조정할 때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거리의 시위는 평화적 언로가 막힌 체제에서 대중의 의사를 표시하는 방법이었다. 21세기에는 언론과 인터넷, 유튜브, SNS 등 다양한 전달 수단이 있다. 제도적으로 메시지 전달이 어려운 소수 세력도 아니고 거대한 주요 정당들이 세금으로 시민에게 정치 스트레스를 강제하는 행위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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