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지령, 사회 혼란 유발 방식으로 진화
노조 활동을 빙자하며 북한의 지령에 따라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민주노총 간부가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북한은 남한의 국가기밀을 취득하라는 고전 방식의 지령뿐 아니라, ‘남남갈등’을 유발하며 한국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행동강령을 내려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후쿠시마 물고기 괴담’을 퍼트리거나 ‘이태원 참사 당시 제2의 촛불운동을 진행하라’는 식이다.
또 남한 내 활동 중인 고정간첩 연령이 40∼60대로 노령화된 만큼 한국 MZ세대를 포섭하라는 지령을 내려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다양한 방식의 간첩 활동을 요구하며 21세기에 맞게 진화한 것이다.
수원지법 형사14부(고권홍 부장판사)는 6일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등) 혐의로 기소된 전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 석모(53)씨에게 이 같은 실형과 함께 자격정지 15년을 선고했다.
또 국가보안법 위반(특수잠입·탈출 등) 혐의로 함께 기소된 전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김모(49)씨에겐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전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부위원장 양모(55)씨에겐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각각 선고했다. 다만 민주노총 산하의 한 연맹에서 조직부장으로 활동했던 신모(52)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유죄를 선고받은 3명은 도주 우려가 있어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집회, 표현의 자유 등 기본적인 권리는 보장되고 있으나 이는 무제한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며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위협이 현존하는 이상 반국가 활동을 규제해 국가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석씨에 대해 “피고인의 범행은 북한을 이롭게 하고 우리 사회에 분열과 혼란을 초래해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큰 범죄”라며 “범행이 장기간에 걸쳐 이뤄졌고 은밀하고 치밀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했다.
석씨 등은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북한 문화교류국의 지령을 받아 합법적 노조활동을 빙자하며 간첩활동을 하거나, 중국과 캄보디아 등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선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과 국가정보원, 경찰 등은 민주노총 사무실과 석씨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해 역대 국가보안법위반 사건 중 최다 규모인 총 90건의 북한 지령문과 보고문 24건, 암호해독키 등을 확보했다.
북한은 암호화 프로그램인 ‘스테가노그래피’(기밀정보를 이미지 파일 등에 숨기는 방법)를 이용해 고정간첩과 문서를 주고 받는데, 이를 해독할 때 필요한 암호파일이 민주노총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공소 사실을 부인하며 “국가보안법으로 정치적 반대자를 처벌하는 게 21세기에도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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