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병원으로 이송해도 고칠 수 없으니 차라리 죽여버리는 게 낫겠다."
이 사건은 단순한 상해로 끝날 수 있었던 비극이었다. 다툼 중 상대의 목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본 A(66)씨가 폭력을 멈추고 병원으로 이송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3월 25일 오전 10시경 강원도 소재 자택에서 A씨는 B(63)씨와 술을 마셨다. B씨는 평소 함께 공공근로를 하며 술을 자주 나누던 동네 후배였다.
술이 떨어지자 두 사람은 B씨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술자리를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사소한 말다툼이 발생했다. 결국 B씨가 흉기를 들면서 몸싸움으로 번졌고, 그 과정에서 B씨의 목이 베였다.
이때 A씨는 B씨가 피를 많이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도 즉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고 흉기를 빼앗아 B씨를 살해했다. 약 3시간 뒤 A씨는 경찰에 자수했으며, 결국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재판에서 "B씨가 나 혼자 공공근로 일자리에 지원해 직업을 차지했다며 지속적으로 비난하여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먼저 흉기를 든 점에서 사건이 우발적으로 촉발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A씨가 흉기를 휘두를 당시 살인의 확정적 의도를 가졌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A씨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A씨의 자수를 특별 양형 요소로 참작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형량이 가볍다며 항소했고, A씨 측은 형량이 무겁다고 항소했다. 2심은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하며 '자수 감경' 여부에 초점을 맞췄다.
재판부는 A씨가 범행 후 택시를 타고 다방에 들러 성매매를 시도했으며, 112 신고 후 경찰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을 폭행한 점을 지적하며, 진정한 뉘우침으로 자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자수하지 않았더라도 사건 당시 CCTV와 흉기에서 검출된 DNA 증거로 인해 용의자로 특정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그의 자수가 수사에 크게 기여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가 사건 당시 "피해자의 목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병원으로 옮겨도 소용없을 것 같아 차라리 죽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진술을 바탕으로, A씨의 죄질이 불량하고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다만 잔혹한 범행 수법의 적용 여부를 검토한 결과 엄밀한 의미에서 잔혹성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범행의 결과가 참혹하고 피해자가 상당 시간 고통 속에서 숨진 점을 고려해 잔혹한 범행에 준하는 처벌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유로 재판부는 원심보다 무거운 징역 13년을 선고하며 사건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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