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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출발은 기술” 열공하는 신중년 [연중기획-소멸위기 대한민국, 미래전략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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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1-12 06:00:00 수정 : 2024-11-12 14: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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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텍대학 신중년특화 과정 열기… 평균 연령 55세 수료생 증가

은퇴 후 ‘반려 기술’ 필수 시대… “일자리 질·자격 교육 강화를”

신중년 ‘기술 배우기’ 열풍

만 40세 이상 미취업자 국비 무료 과정
2024년 경쟁률 4.64대 1 … 취업률 67.3%

“기술 배우면 나이 들어도 오란 곳 많아
60세 넘은 분도 열심히 하니 자극 됐다”

50대 이상 국가기술자격증 도전 급증
지난해 32만여명 응시 ‘역대 최다’ 기록

“사무직이나 관리직은 퇴직하면 갈 데가 없어요. 기술은 배워 놓으면 건강이 허락되는 한 어디든지 갈 수 있잖아요. 아직 직장에 있는 후배들한테는 퇴사 2∼3년 전부터 미리 (퇴직 후를) 준비하라고 조언하죠.”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국폴리텍대학교(폴리텍) 서울정수캠퍼스의 지능형에너지설비과 수업에 참여 중이던 이홍렬(60)씨는 올해 8월부터 신중년특화과정을 듣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신중년특화과정 수강은 지난해 6월까지 꼬박 32년을 한 회사에 몸담은 뒤 이씨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로 한 첫걸음이다. 그의 목표는 명확하다. 국가기술자격증인 공조냉동기계 기능사와 산업기사를 취득한 뒤 곧장 시설관리 분야의 취업에 나서는 것이다.

 

신중년특화과정은 만 40세 이상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직업훈련을 지원하는 국비 무료 과정이다. 전기공사, 공조설비 등 96개 분야로 나누어져 있으며, 전국 40개 캠퍼스 중 16개 캠퍼스에 26개 장기과정(기간 6개월), 30개 캠퍼스에 70개 단기과정(기간 3개월)이 개설돼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50명 늘어난 2550명이 이 과정을 수료할 예정이다.

 

폴리텍은 1968년 박정희정부 당시 산업인력 육성 차원에서 설립된 중앙직업훈련원이 모태다. 2006년 기능대학과 직업전문학교를 통합해 지금의 폴리텍이 출범했고, 신중년특화과정은 2018년 문을 열었다. 폴리텍은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의 은퇴와 중장년층의 훈련 수요가 늘어나는 점을 고려해 이 과정을 지속 확대할 계획이다. 내년 관련 예산도 올해(49억원)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107억원으로 편성됐다.

5일 서울 용산구 한국폴리텍대학교 서울정수캠퍼스 제2공학관에서 지능형에너지설비과 신중년특화과정 훈련생들이 홍경표 산학겸임교원으로부터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 설명을 듣고 있다. 이지민 기자

입학생들의 평균 연령은 어려지는 추세다. 올해 상반기 신중년특화과정 입학생들의 평균 연령은 54.9세다. 2022년 55.8세, 2023년은 55.1세로, 매년 평균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2차 베이비부머가 올해부터 은퇴 연령(60세)에 진입하는 가운데 미리부터 ‘다음 직업’을 준비하는 신중년 및 고령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021년 2학기부터 지능형에너지설비과를 이끌어온 최재영(44) 학과장은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를 체감하고 있다. 그는 “2021년에만 해도 1970년대생이 많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1970년대생이 많이 입학한다”며 “퇴직 전 직업도 예전에는 사무직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정보기술(IT) 분야 프로그래머 등 점차 다양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 입학생이 늘고 있는 것도 새로운 변화다. 2022년 18.4%였던 여성 비중은 2023년 21.1%, 올해는 21.4%를 기록했다.

 

◆입사 제의 마다하고 폴리텍으로

 

이날 폴리텍 서울정수캠퍼스 제2공학관에서는 인생 후반기를 준비하는 훈련생 27명이 지능형에너지설비과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배움을 새로 시작한 이들은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홍경표 겸임교수를 눈으로 열심히 좇았다.

지난해 말 퇴직한 이필재(59)씨는 “여기 와서 보니 60세가 넘으신 분들도 엄청나게 열심히 하는 걸 보고 자극이 됐다”며 “제 나이면 아직 젊은 것 같다”고 했다. 홍렬씨처럼 그도 금융기관에서 꼬박 32년을 일했다. 필재씨는 12월까지 4개월 교육과정을 마친 뒤 공조냉동기계 산업기사 자격증을 따 생애 두 번째 직업 인생을 시작할 계획이다.

 

홍렬씨와 필재씨 두 사람 다 ‘퇴직 뒤 다른 기업의 사무직으로 취직하면 어떨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기술을 배우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홍렬씨는 “두 군데서 입사 제의가 있었는데, 전 직장 정보 때문에 내가 필요한 걸 텐데, 그렇게 보면 1∼2년 다닌 뒤엔 거기서도 나가야 할 게 뻔하다”며 “기술은 배우면 축적되고, 더 나이 들어서까지 오란 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정수캠퍼스의 신중년특화과정 중 지능형에너지설비과는 입학경쟁률도, 취업률도 모두 높다. 공조냉동·에너지·소방·가스 등 각종 설비를 시공, 감리, 검사, 운전, 유지관리 등 기술인력 양성하는 이 과정의 경쟁률은 지난해 3.48대 1에서 올해엔 4.64대 1로 올랐다. 지원자 4명 중 3명은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하는 셈이다. 일단 입학하면 취업 가능성은 크다. 자격 취득률은 지난해 기준 87%, 취업률은 67.3%다.

 

4.64대 1의 경쟁률을 뚫은 필재씨는 앞으로 더 경쟁률이 높아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는 “퇴직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이 많이 나 있는 교육기관”이라며 “저처럼 국민연금 나오기까지 소득 크레바스가 있는 사람들한테 특히 필요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반려 기술’이 필수인 시대

 

3년이란 시간을 신중년들과 한 교실에서 보낸 최 학과장은 항상 훈련생들의 열정에 놀란다고 했다. 강의가 끝난 뒤에도 남아서 공부하는 훈련생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함께하는 훈련생이 늘어난 만큼 그에겐 기억에 남는 학생도 많다. 딱 1명만 꼽아 달라는 부탁에 최 학과장은 2022년 상반기 지능형에너지설비과(당시 그린에너지설비과) 훈련생인 명성민(53)씨를 언급했다. 운영하던 합기도장을 폐업한 뒤 경비직에 종사하던 명씨는 노후 대비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술 분야로 전직을 꿈꾸며 입학했다고 한다. 생계의 끈을 놓을 수는 없기에 야간 대리운전을 병행해야 했던 그다.

 

최 학과장은 명씨를 ‘아픈 손가락’에 비유했다. 명씨는 공조냉동기계 기능사 필기시험에 떨어진 뒤 학교에 중도 포기를 통보했다. 최 학과장은 수업에 나오지 않은 명씨를 찾아가 설득했고, 재도전을 끈질기게 권유했다. 결국 명씨는 신중년과정 중 공조냉동기계 산업기사 필기시험에 합격했고, 수료 뒤인 그해 11월 최종 자격증을 손에 거머쥐었다. 지난해 3월에는 한국전력공사 시설관리 부문 자회사인 한전FMS에 재취업해 현재 기계설비유지관리자 보조선임으로 근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장년 및 고령 일자리의 질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술자격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65세 이상 임금근로자의 74.7%는 기존 직장이 아닌 새 일터에서 일하는데 대부분 실업 위험이 크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발간한 ‘65세 이상 신규 취업자의 실업급여 적용에 따른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65세 이상 신규 취업자 10명 중 8명은 임시직 및 일용직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 학과장은 “은퇴 뒤 반려동물을 키울 게 아니라 반려 기술을 익혀야 한다”며 “‘반려 기술’ 체득이 필수가 된 시대”라고 강조했다.

 

50대 이상 연령층에서 국가기술 자격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기술자격 응시자 중 50대 이상은 32만여명으로 14.1%를 차지했다. 2022년 대비 22.2% 증가한 규모로, 역대 최다 응시 인원이다.

 

최 학과장은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유망한 기술 분야는 아직 많다고 했다. 소방기술사 등을 포함한 산업안전분야가 대표적이다. 그는 “안전사고가 났을 때 AI가 책임질 수는 없기 때문에 감리 등 전문인력 수요는 계속 있을 것”이라며 “퇴직자들에겐 따기 쉬운 자격증보다는 경쟁력을 가진, 진입장벽이 어느 정도 있는 분야에 도전하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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