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선 기간 김정은과 친분 강조
1기 때 실무진 알렉스 웡도 백악관行
우선 과제 아닌 대러·대중 정책 등 일환
우크라·중동보다 후순위로 밀릴 수도
핵능력 과시 김정은, 美와 협상 선긋기
안전보장 등 대화 재개 선결 요건 제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이 북·미 정상외교 재추진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멈춰 있던 북·미 대화가 재개되는 등 꽉 막힌 한반도 정세에 ‘트럼프발 지각변동’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북한 문제가 트럼프 당선인 대외 정책의 우선 과제이기보다는 대러 정책, 대중 정책 등의 일부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보도한 트럼프 당선인 측의 트럼프 당선인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직접 대화 추진은 예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운동 기간 꾸준히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강조하고, 자신의 정상외교로 미국이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했다는 논리를 폈다. 7월 밀워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하면서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우리가 재집권하면 나는 그(김정은)와 잘 지낼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북·미 대화를 대선 공약 수준으로 격상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당선인 측 인사들로부터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면 북한과 정상외교를 시작할 것이라는 언급도 꾸준히 나왔다. 최근엔 트럼프 당선인이 집권 1기 때 북·미 정상외교에 실무진으로 깊이 관여한 알렉스 웡 전 대북특별부대표를 차기 백악관의 국가안보 수석 부(副)보좌관으로 발탁함으로써 북·미 대화에 의지를 갖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다만 미국 외교가에선 트럼프 1기와 달리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이 현재로서 북한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로이터통신이 보도한 관계자 언급에서도 우크라이나, 중동 문제보다 북한이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제기됐다. 따라서 정상외교가 시도되더라도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선 트럼프 당선인의 예측할 수 없는 성향을 고려할 때 의외로 조기에 대화가 추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과의 외교 목표에서도 완전한 비핵화보다는 북핵 위협을 관리하는 정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트럼프 1기에서 꾸준히 반복돼온 ‘스몰 딜’ 우려가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테이블에서 다뤄지고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고려 대상이 아닐 수 있다.
현재로서 북한의 대화 재개 의지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핵을 고도화하고 경제적으로 자강하며 러시아와 밀착해온 김 위원장이 다시 트럼프 당선인과의 대화에 나서려 할 유인이 적다는 것이다. 이미 김 위원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대화 시도에 선을 여러 차례 그었다. 7월 트럼프 당선인이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대화 재개 의지를 밝힌 뒤엔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논평을 내 “수뇌(정상) 간 개인적 친분관계를 내세우면서 국가 간 관계에 반영하려 한 것은 사실이나 실질적인 긍정적 변화는 가져오지 못했다”며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고 선을 그었다. 대선 후인 지난 16일에는 김 위원장이 직접 조선인민군 제4차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 대회 연설에서 “미국의 더러운 정체성”의 불변성을 지적하며 “핵무력 강화노선은 불가역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북한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뒤를 고려하고 있을 수 있다. 엘런 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최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기에 종결짓고, 미·러 관계를 개선할 경우 북·미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개선되면 김 위원장으로서도 외교 다변화를 위해 다시 미국과 대화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당선인으로선 미·러 관계 개선 흐름에 북한까지 엮고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는 구상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외교가 다시 추진될 경우 한국엔 ‘양날의 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꽉 막힌 판을 움직이는 긍정적 현상 변경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미국에 대한 북핵 위협만을 관리하지 않고 한국의 안보 이익도 함께 협상 테이블에서 다뤄지게 하려면 쉽지 않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1기 당시의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 전직 미국 당국자들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북한과의 대화에서 한국을 때때로 배제하려 했으며, 당시 문재인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북한 전문가들은 올해 트럼프 당선인의 대화 재개 시사에 북한이 두 차례 반응한 것을 북·미 대화 재개의 선결 요건을 제시한 것으로 본다. 북한의 메시지를 분석하면 북·미 수교 등 적대정책 포기와 안전보장을 미국이 먼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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