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퇴진 시기 등 조속히 제시해야
野도 강압적 방법 고집해선 안 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그제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졌으나 의결정족수 미달로 폐기됐다. 국민의힘 의원 105명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아 개표도 하지 못한 채 ‘투표 불성립’이 선언됐다. 국민의힘은 본회의에 앞서 윤 대통령 탄핵안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 ‘부결 당론’을 확정했다. “국정 마비와 헌정 중단의 비극을 되풀이할 수 없었다”는 게 국민의힘이 내세운 명분이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는 응답(5일 리얼미터)이 70%를 훌쩍 넘고 있다. 국회 앞 시위대가 “내란죄 공범”이라고 격렬히 규탄한 국민의힘은 국민의 뜻에 역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어제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발표한 담화문에서 “윤 대통령이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국민 다수 판단”이라고 했다. 한 총리와 함께 정국을 수습하겠다고도 했다. 한 대표 언급대로 윤 대통령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퇴진이 불가피하다. 계엄 선포·해제 이후 침묵을 지켜 온 윤 대통령은 탄핵 표결을 앞둔 그제 오전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계엄 선포에 대해 사과했다. 본인 임기와 정국 수습 방안은 여당에 일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 진정성 있는 호소도 담기지 않았다.
한 대표는 어제 담화에서 “질서 있는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약속했다. 이 정도 언급으로 정국이 진정될지는 의문시된다. 당장 우원식 국회의장이 어제 “그 누구도 부여한 바 없는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여당이 공동 행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고 했다. 야당도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총리와 여당 대표가 국정을 맡겠다는 것은 2차 내란 행위”라고 주장했다. 한 대표가 몇 번이나 오락가락 한 것도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대목이다. 처음엔 탄핵 반대 당론에 뜻을 같이했다. 그러다 다시 탄핵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고, 어제는 조기 퇴진을 언급했다. 한 총리도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에 참석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 총리와 한 대표는 최대한 빨리 윤 대통령의 잔여 임기와 다음 대선 일정, 그 기간의 국정 운영에 대해 분명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로드맵 제시가 늦어지거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을 경우 거센 역풍이 불가피하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 유고 상황이 기약 없이 지속해서는 안 된다. 우 국회의장이 어제 제안한 ‘대통령 직무 즉각 중단을 위한 여야 회담’에 지체없이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
야당도 냉정해져야 한다. 민주당은 내일 정기국회가 종료되면 즉각 임시국회를 열어 탄핵을 재추진하고 앞으로 임시회 회기를 일주일 단위로 끊어 탄핵안 재발의와 표결을 이어가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강압적인 방법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탄핵안이 한번 부결되면 관성이 붙어 뒤집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야당의 ‘대통령 탄핵’ 주장을 ‘이재명 대표의 대권 가도’와 연결짓는 시각이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탄핵만이 정국을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나라가 쪼개지지 않도록 힘을 보태는 게 성숙한 야당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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