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전자 고위임원들이 국회의원실을 찾아가 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 예외조항을 포함해 줄 것을 호소했다고 한다. 삼성이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핵심 연구개발(R&D) 인력의 집중·유연 근무를 3년만이라도 도입해달라는 요청까지 담겼다. 해외영업현장에서, 연구실에서 뛰어야 할 기업인이 야당 의원실로 가 “제대로 일하게 해달라”고 읍소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경쟁국의 기업 연구실은 밤낮없이 돌아간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는 약 10년 전부터 24시간 3교대(나이트호크 프로젝트)로 R&D 조직을 가동해왔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최강자 미국 엔비디아도 연구원들이 막대한 보상을 받는 대신 주 7일, 새벽 2시까지 근무하는 일이 다반사다. 마이크론 역시 AI 반도체 개발자들이 하루 3∼4시간 자고 연구에 몰두한다. 그런데 국내 반도체 기업은 근무시간 규제로 오후 6시면 장비 전원이 자동으로 꺼져 모두 퇴근해야 하는 판이다.
삼성 보고서에 따르면 핵심인력이 근로시간 한도 탓에 출근조차 하지 못해 최신반도체 제품 개발이 1년6개월이나 늦어지는 일도 벌어졌다.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고 높은 보수도 받지 못하면서 인력유출이 심각해지고 있다. 엔비디아 직원 3만명 중 500여명이 삼성 출신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래서는 분초를 다투는 반도체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을 길이 없다.
국회는 오늘 본회의에서 비쟁점 민생법안 110여건을 처리할 예정이지만 야당의 반대로 반도체특별법은 빠졌다. 발의된 특별법 적용대상자는 삼성전자 전 직원 약 12만5000명의 5% 수준인 6000∼7000명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예외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해 제도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둘러대지만, 노동계 눈치를 보는 것 빼곤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이재명 대표도 “반도체산업은 우리 경제의 대들보”라고 했지만 말뿐이다. 주 52시간에 갇혀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출의 20%, 투자의 40%를 차지하는 반도체산업을 망가트려도 괜찮은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반국익’ 세력이라는 질타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대한상의가 반도체 등 첨단기업 43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53.7%는 경쟁국보다 규제 수준이 과도하다고 답했다. 정치가 경쟁국보다 더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시대착오적 규제로 기업경쟁력을 갉아먹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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