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콘크리트 둔덕 규정에 맞나
미·일 등 선진국선 오버런에 대비
비슷한 사고 발생 불구 사망자 없어
국토부 관련된 국내 규정 확인 중
② 동체착륙 외부제동장치 부재
“활주로 마찰 완화 물질 안 써” 지적에
국토부 “오히려 피해키워 사용 안해”
비상상황 조종사 최선의 선택 한 듯
179명의 생명을 앗아간 제주항공 참사의 원인 규명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선진국에 비해 허술한 항공 규정이 사고를 키운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돼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오버런’(활주로 내에서 멈추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해 로컬라이저(착륙 유도 안전시설) 등 공항부지 내 시설물을 쉽게 부서질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무안공항의 경우 단단한 콘크리트 기초 위에 설치해 조종사의 최선의 대처에도 참사를 막을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3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사고 여객기인 제주항공 7C2216편의 사고가 커진 이유로 활주로 끝 로컬라이저 콘크리트 둔덕 충돌, 랜딩기어(착륙 바퀴) 없이 기체 바닥으로 착륙하는 ‘동체착륙’ 안전장치 부재 등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공항 내 장애물, 부러지기 쉬운 재질이어야
사고가 발생한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종단에서 280m 정도 떨어진 곳에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이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은 2∼3m 높이의 둔덕 안에 30∼40cm 깊이로 심겨 있고 지상으로도 7㎝가량 튀어나와 있다.
무안국제공항은 활주로 종단 이후 지면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흙으로 둔덕을 세워 수평을 맞춘 것이다. 로컬라이저는 활주로의 중앙선과 수직을 이루도록 배치해야 항공기가 제대로 활주로 중앙 정렬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예규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 지침’ 제23조에 따르면 공항부지에 있고 장애물로 간주되는 모든 장비나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 평시엔 구조적 통합성과 견고성을 유지하다, 그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항공기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파손·변형·구부러지게끔 설치돼야 한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선진국도 이와 비슷한 규정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황호원 한국항공대 교수(항공우주법학과)는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도 오버런을 대비해 로컬라이저와 구조물 등을 부러지고 쉬운 재질로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며 “덕분에 일본에서도 이번과 비슷한 사고가 났을 때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5년 4월에 발생한 일본 히로시마 공항 아시아나 162편 로컬라이저 충돌 사고 때 탑승객 82명 전원 생존했으며, 2022년 10월 필리핀 막탄 세부 공항 대한항공 631편 로컬라이저 충돌에서도 탑승객 173명 전원이 생존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설치물 규정을 확인해보겠다는 입장이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미국이나 스페인 등에서 콘크리트로 로컬라이저를 고정한 경우가 있다”며 “콘크리트 구조물과 관련해 국내 규정에 설치물 재질, 소재에 대한 규정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여객기 위한 외부 비상제동장치 부재
동체착륙에 대비한 공항의 비상 안전장치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의견도 나온다. 동체착륙의 마찰을 줄여 화재 등을 예방할 목적으로 바닥에 뿌리는 ‘폼’이나, 항공기의 제동을 도와주는 그물망 형태의 ‘배리어’가 있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폼이 마찰을 줄여 제동을 더 어렵게 하는 경우가 있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규정에도 없으며 배리어도 민항기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외부에서 착륙하는 항공기의 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장치는 없다고 강조했다. 권보헌 극동대 교수(항공안전관리학)는 “전투기가 아닌 여객기의 경우 크기가 커 배리어를 사용할 수 없다”며 “현재 미국에서 땅이 조금씩 파이면서 속도를 줄여주는 ‘클래시존’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아는데 상용화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 밖에 사고 기종인 보잉 737-800의 설계상 문제가 근본적 원인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기종이 제주항공 참사 하루 전 노르웨이서도 랜딩기어 문제로 비상착륙을 했고, 참사 하루 뒤인 이날도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제주행 동일 기종이 동일한 문제로 회항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해당 기종에 대한 전수 특별점검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사고의 경우 엔진에 조류가 빨려 들어가는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해 두 엔진이 모두 파손돼 유압을 통한 랜딩기어 작동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물론 수동으로도 조작이 가능하지만 수동 조작은 조종실을 벗어난 곳에 위치해 ‘메이데이(구조요청)’ 선언 뒤 충돌까지 4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황 교수는 “아주 짧은 착륙 과정을 고려하면 버드 스트라이크 뒤 엔진 양쪽이 모두 고장 나 착륙 외에는 답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조종사들은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4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콘크리트 구조물까지는 생각지 못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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