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환율급등 여파로 먹거리와 생활필수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농수산물값도 뛰고 있다. 최근 4개월 새 1%대에 그쳤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대로 반등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재앙이 현실로 닥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한국소비자원의 최근 생필품가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기준 가공식품 175개 품목은 1년 전보다 3.9% 올랐고 상승 품목도 121개로 70%에 육박했다. 초콜릿과 커피, 카레처럼 원재료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의 오름폭이 컸다. 새해 들어서도 과자부터 음료, 치킨, 생필품, 화장품 등에 이르기까지 가격 인상이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환율급등 여파로 원재료 가격이 치솟자 기업들이 줄줄이 제품가격을 올린 탓이다. 에르메스, 롤렉스 등 해외 명품 브랜드까지 인상대열에 합류하는 판이다.
설 명절을 앞두고 농산물값도 심상치 않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설 성수품인 무와 배추값이 3일 현재 1년 전보다 77.4%, 58.9%나 급등했다. 폭염 등 기후변화로 작황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배, 감귤, 딸기 등 과일값도 덩달아 뛰었다. 돼지고기 삼겹살이 8% 이상 올랐고 한우는 1년 전과 비슷했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 ‘장보기 겁난다’는 비명과 탄식이 절로 난다.
정부는 이번 주 물가관리대책을 발표하며 설 성수품 공급과 할인행사를 역대 최대수준으로 지원한다고 한다. 일회성 보여주기식 대책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긴 안목에서 민생안정을 기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이 절실하다. 과거의 ‘팔 비틀기’식 물가관리는 곤란하지만 어수선한 정국을 틈탄 기업들의 과도한 가격 인상이나 제품용량 축소 등 꼼수·편법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농산물의 경우 중간상만 배를 불리는 유통구조를 뜯어고치고 수급 불안 품목의 외국산 수입도 검토해야 한다. 거시경제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발등의 불인 환율을 방어하는 데 가용한 정책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재정 조기 집행과 금리 인하도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지만, 물가를 자극하지 않도록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 물론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힘들다. 가뜩이나 정치불안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물가 고삐마저 풀리면 민심이 흉흉해지고 사회 질서마저 흔들릴 수 있다. 여·야·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물가·민생 안정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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