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시 산내면 들판 위에서 작업자들이 차가운 겨울바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천’ 말리기 작업에 한창이다.
한천(寒天)이란 해조류 우뭇가사리가 원료인 우무(우무묵)를 다시 건조한 것이다. 우뭇가사리를 끓여 추출한 액을 응고한 우무를 추운 겨울 자연상태에서 얼렸다 녹이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리는 동결·건조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우무 100㎏을 건조해야 한천 1㎏을 얻을 수 있다.
차가운 기온(寒)과 맑은 날씨(天)가 중요해 하늘이 허락해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한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간자라시(寒?·한쇄: 차가운 공기 중에 볕을 쬐거나 말림) 도코로텐(우무)’으로 불리다가 시대가 흘러 앞 단어의 ‘간’과 뒤 단어의 ‘텐’ 한 자씩 딴 압축형 ‘간텐’으로 쓰이면서 같은 발음의 한자인 ‘寒天’이 붙었다고 설명한다.
우뭇가사리가 식이섬유소가 풍부하고 칼로리가 낮아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한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제조방법에는 천연적으로 만드는 자연한천과 기계적으로 만드는 공업한천이 있다. 모양에 따라서는 네모난 가래떡 모양의 각한천, 얇게 썬 실한천, 가루로 된 분말한천으로 나뉜다.
밀양한천은 약 16만5000㎡(5만평), 축구장 20여개 크기의 대지에 생산공장과 건조장을 갖추고 연간 300t의 한천을 생산하고 있다. 1970년대 한천공장이 40여곳이나 될 정도로 많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한천을 제조하는 곳은 ‘밀양한천’이 유일하다.
좋은 품질의 한천을 제조하기 위해선 기온, 지형, 수질 3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 밀양은 겨울철 기온이 밤에는 영하 5∼10도, 낮에는 영상 5∼10도까지 올라 일교차가 큰 날씨를 보인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에다 산이 깊고 물이 좋아 모든 요건을 갖춘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서는 우뭇가사리를 고아 진액을 만든 뒤 식혀서 탄성이 생긴 우무를 기호식품으로 애용해 왔다. 지금도 여름철 바닷가나 전통시장에 가면 행상들이 콩가루를 탄 얼음물에 우무를 넣은 ‘우무콩국’을 파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일본은 17세기 우무 가공법을 한 단계 발전시킨 한천 제조법을 개발했다. 우리나라에는 1912년 대구 신암동에 조선총독부의 한천제조시험소가 세워지면서 한천이 처음 등장했다.
1941년에는 고(故) 김성률씨가 경남 양산 명곡리에 한국인 최초로 명곡한천을 설립했다. 한천은 해방 이후 한국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진 수출품이었다. 1954년 당시 국내 총 수출액이 600만달러였는데, 이 중 한천의 연간 수출액이 120만달러를 차지했다.
한천은 ‘식이섬유의 왕’으로 불린다. 일본의 ‘식품의 식이섬유 함유량 일람표’에 따르면 한천이 81.29%로 가장 많은 식이섬유를 함유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식이섬유는 체내 수분을 흡수해 포만감을 준다. 음식물의 과잉섭취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다이어트 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소화 배출과정에서 콜레스테롤과 노폐물을 함께 체외로 배출시켜 ‘내 몸의 청소부’라 부르기도 한다. 칼슘, 마그네슘, 철, 구리, 아연 등 미네랄도 다량 함유하고 있다.
풍부한 식이섬유와 영양소를 가진 한천은 젤리·푸딩·양갱 등 다양한 방식의 요리에 활용될 뿐 아니라 공업, 의약, 미생물 연구 분야 등에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건강 유지에 도움을 주는 자연식품인 한천이 우리 곁에서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도록 관심과 노력이 계속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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