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한도 높이고 품목 확대해야
십수년째 품목 제한… 스스로 발묶는 제주도
도 조례로 가능한데도 특허권한 ‘유명무실’
“예전에는 제주 내국인면세점에서 술·담배를 사면 왕복 항공료는 충분히 여행경비에서 빠지곤 했는데 지금은 고환율 때문에 시중 가격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제주를 찾는 내국인관광객이 줄면서 내국인면세점 매출도 2년째 급락했다.

21일 제주 지정면세점을 운영하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제주관광공사(JTO)에 따르면 2024년 면세점 매출액은 각각 4636억원, 331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JDC 공항·항만 면세점 매출은 2023년 5352억원보다 13.4%, 2022년 6585억원보다 29.6%나 감소했다.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제주) 내 JTO 지정면세점은 2023년 384억원보다 13.8%, 2022년 539억원보다 38.6%나 줄었다.
2022년 역대 최고 매출액을 기록한 뒤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순이익도 JDC 면세점의 경우 2022년 1547억원에서 2023년 1158억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제주를 찾은 내국인 관광객은 전체의 86%를 차지하는 1187만6303명으로, 전년 1268만1999명보다 6.4% 줄었다. 올 들어 20일까지 제주 방문 내국인관광객은 64만5356명으로 18.9%나 감소했다.
내국인면세점 매출 하락은 관광객 감소 탓도 있지만 구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최근 5년간 JDC 면세점 1인 객단가는 평균 12만1378원이다. JTO 중문면세점은 20만원가량이다.
1인당 면세한도 800달러(115만원)에 한참 못 미친다.
20년 가까이 묶여 있는 지정면세점 판매 품목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제주에는 외국인 중심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내면세점과 내국인도 이용 가능한 지정면세점이 있다. 지정면세점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제주세관장이 지정하는 면세품 판매장을 뜻한다.
시내면세점은 롯데면세점 제주점·신라면세점 제주점이 있으며, 지정면세점으로는 JDC와 JTO가 제주공항·항만과 중문관광단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는 2006년 제주 특별법에 따라 제주관광공사를 설립하고 2009년 3월 제주 관광 통합마케팅 재원 마련을 위해 ICC제주에 지정면세점(JTO 지정면세점)을 설치했다. 앞서 2002년 설치한 공항 지정면세점(JDC 지정면세점)은 국토교통부(JDC)가, 시내 지정면세점은 제주도가 운영 권한을 갖고 있다. 국내 항공·선박을 예매하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내국인이 주로 이용한다. 지난해부터 면세한도가 연 6회, 1회 당 600달러에서 800달러로 늘었고, 주류도 기존 1병에서 2병까지 구입할 수 있다.
제주도가 운영하는 JTO 지정면세점의 시장 점유율은 7.7%에 불과하다.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 동안 연간 매출은 개장 첫해(2009년 3월30일 개장)를 제외하고 306억∼540억원으로 답보 상태다. 입점 조건이 여행객이 몰리는 공항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판매 품목도 공항과 비슷하다.

◆의류·레저스포츠용품 등 품목 확대해야
실제 지난해 상반기 품목별 매출을 보면 JDC 지정면세점(2872억2500만원)은 주류가 640억원(22.3%)로 가장 많았고, 화장품 554억원(19.3%), 담배 522억원(18.2%), 패션(가방·지갑·벨트)·라이터 416억원, 향수 358억원(12.5%) 순이었다.
JTO 지정면세점(208억9700만원)도 주류 79억원(38.7%)으로 가장 많았고, 패션 42억원(20.5%), 화장품 19억원(9.5%), 담배 17억원(8.5%), 선글라스 16억원(8.2%) 등이었다.
지정면세점 설립 취지인 제주도 여행객의 편의 증진과 지역 균형 발전 측면에서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지만 규제 권한을 갖고 있는 제주도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다.
지정면세점 판매 품목 확대는 ‘제주특별자치도 지정면세점 면세물품 범위에 관한 조례’로 확대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 상권 보호’라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대의 명분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특별자치도가 가진 지정면세점 특허권은 유명무실하다.
보세판매장과 입국장면세점처럼 연간 구매 횟수와 판매 품목 제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오키나와 지정면세점의 경우 품목 제한이 없고, 중국 하이난도 품목제한을 38종에서 45종으로 확대한 상황에서 제주 지정면세점에서 판매하는 품목은 17종으로 제한돼 있다. 국내 면세한도가 800달러에 머물러 있어, 중국 하이난의 10만위안(약 1978만원)에 비해 경쟁력도 크게 밀린다.
2002년 국내 면세점 설립 당시 유통질서를 교란하거나 과소비 조장 우려로 생긴 규제가 유지되고 있다.
구매력이 높은 골프관광객 등을 상대로 한 골프 등 레저스포츠용품 판매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JDC 지정면세점은 규제가 완화될 때마다 실적 개선을 경험했다. 2014년 12월 1회 구매한도가 400달러에서 600달러로 상향됐을 때와 2020년 4월 주류·담배에 별도 면세가 적용되자 매출액이 전년 대비 1000~2000억원 가량 늘었다.
JDC 관계자는 “국내 경기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대대적으로 규제를 완화한 중국 하이난 내국인 면세점의 사례 등을 참고해 규제 개선 방안을 논의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제주도 공기업인 제주관광공사 면세점 성장이 더딘 이유는 불리한 입지 조건 탓도 있다.
JTO 지정면세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품목 확대와 함께 매장 규모를 키우거나 이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매장 면적(2285.6m², 약 691평) 2009년 개점 당시 그대로다. 반면, JDC 공항 지정면세점의 경우 2002년 설치 당시 매장 면적보다 현재 두배 이상 확장했다. 공항 지정면세점 매출이 오르면서 한국공항공사 제주공항 임대료 수입도 덩달아 증가해 제주공항 시설 확충 등에 쓰이고 있다.
JTO 지정면세점 이전도 설립 당시 JDC와 맺은 협약을 변경해야만 가능하다. 면세사업 부진은 청년 일자리와도 직결된다. 시내면세점과 지정면세점은 최근 감원 등 구조조정이 잇따르고 있다.
JTO 지정면세점 관계자는 “면세점 매출이 줄면서 불가피하게 인력도 감축하고 있다”라며 “면세점은 규모의 경제와 쇼핑과 결합한 재미있는 체험 콘텐츠가 함께 있어야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라고 토로했다.
◆中 하이난, 면세쇼핑 규제 풀자 지역경제 성장 ‘쑥쑥’
제주도 지정면세점을 벤치마킹한 중국 하이난성의 경우 2020년 7월 ‘하이난 리다오(‘섬을 떠난다’는 뜻의 중국어) 관광객 면세쇼핑 완화 정책’으로 구매 한도를 1인당 연간 3만위안(한화 593만원)에서 10만위안(한화 1978만원)으로 확대하고 출국을 하지 않는 내·외국인 방문자 모두 면세쇼핑이 가능하게 했다.
또한, 면세품목을 38개에서 45개까지 확대하고 하이난을 방문한 중국 내국인이 본토로 복귀한 후에도 180일간 온라인으로 면세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면의 완화 정책을 폈다.
2020년 중국국영면세품그룹(CDFG)은 중국 정부의 완화 정책을 등에 업고 한국 면세점이 코로나19로 휘청거리는 사이 세계 면세점 매출 1위에 오르며 한국, 홍콩 등 해외 면세시장과 본격적인 경쟁 구도에 돌입했다. 지난해 하이난은 면세점 판매 호조로 인해 지역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해 경제 성장률 목표치를 9.5%(평균 6%)로까지 설정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구매 한도를 늘리는 제도 개선을 지속해서 건의하고 있다”라며 “품목 확대는 지역 상권과 겹치지 않는 수준에서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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