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 “정년 연장 시 청년 일자리 감소 필연”
국회에 발의된 법안 9건 중 8건은 야당발
‘정년 60세’가 법제화된 건 2013년이다. 당시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은 12%였다. 12년이 지난 현재 한국 사회는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이 인구의 20%를 넘어선 초고령화 사회가 됐다. 초고령화에 발맞춰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현행 만 63세에서 2033년부터는 만 65세로 늦춰진다. 향후 소득 공백이 더 길어진다는 의미다.

고령자의 소득 공백이 더 길어지게 놔둘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달 23일 계속고용(정년연장·정년폐지·재고용)의 해법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개최됐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주최한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고령자 계속고용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였다. 노사공은 지금까지 경사노위 안에서 10차례 회의를 거쳤고, 이날 처음으로 공개 토론회를 열어 노사 간 견해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경사노위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가 지난해 6월 발족한 뒤 양측의 입장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쟁점별로 노사 간 주장을 짚어보고, 논의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를 29일 문답(Q&A)으로 정리했다.
―계속고용 논의는 왜 필요한가?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다. 노인 인구 부양 부담이 빠르게 늘고, 경제 성장의 동력이 약화한다는 의미다. 국가와 기업이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할지가 최대 과제이고, 고령자 고용은 핵심 대응 방안으로 꼽힌다.
노후 소득 공백이 심화할 것이라는 점도 계속고용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국민연금 지급 개시 연령은 현행 만 63세에서 2033년까지 만 65세로 늦춰진다. 계속고용의 길을 만들지 않으면 소득 공백 기간은 더 길어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 1위라는 오명은 더 지우기 힘들어진다. 지난해 6월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사노위에서 노사공이 참여하는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가 발족한 이유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계속고용 방법은?
‘정년연장·정년폐지·재고용’ 중 노동계는 정년연장이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은 2033년까지 현행 60세인 법적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로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과 정년이 일치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동시에 근로자를 선별하지 말고, 원하는 근로자 모두 정년을 일률적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본다.
―경영계의 주장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법정 정년을 연장하는 데 반대한다. 기업 부담이 늘어난다는 게 이유다. 대신 재고용으로 계속고용을 모색하자고 주장한다. 사용자가 고령 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새롭게 맺는 것이다. 이를 위해 ‘60세 이후 고령자 재고용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자고 한다. 이 법 안에 파견 규제 등 기존 노동법 규제의 예외를 적용해 기업에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자는 입장이다.
―노동계는 재고용에 반대하는가?
그렇다. 한국노총은 경영계의 주장대로 재고용 특별법을 만들면 정년연장의 유인 효과가 떨어지고, 기업이 비용 절감과 해고가 자유로운 재고용을 선택할 가능성이 지금보다 커질 것으로 본다. 또 일부만 선별해 재고용되면서 고용 불안감이 커지고, 임금을 포함한 노동 조건이 크게 후퇴해 노동자의 권리가 악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계속고용은 소득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인데, 재고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일본처럼 정년연장·정년폐지·재고용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안에도 노동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기업이 선택할 수 있을 경우 ‘계약직 재고용’으로 선택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임은주 한국노총 정책1본부 부본부장은 “일본에서는 평균 30∼50% 수준의 임금이 줄어드는 노동 조건이 악화한 계약직 재고용 형태 도입 비율이 높아 근로 의욕 저하 등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희 L-ESG 평가연구원 원장도 “재고용을 기업에 선택지로 주면, 정년연장을 할 수 있는 기업마저도 정년연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입장은?
정부는 ‘정년연장·정년폐지·재고용’ 중 어떤 것이 옳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경사노위에서 노사공이 합의한 것을 토대로 계속고용 로드맵을 짠다는 원칙만 내놓은 상태다. 다만 큰 전제로 임금체계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임금체계 개편 없는 정년연장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재고용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청년 고용 막는 정년연장은 안 된다‘, ‘청년들이 기업에 들어가려고 목을 매는데 정년만 쳐다보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노조 상층부는 (정년연장이) 자기 문제이기 때문에 굉장히 강하게 말하는데 청년 입장을 대변할 단체는 누구도 없다’는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임영미 고용노동부 통합고용정책국장은 “정부 입장이 재고용인지, 정년연장인지 등을 얘기할 시기는 아니다”라며 “정부의 역할은 데이터를 정확히 제시하고, 정책 패키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임금 조정에 관해서 100명을 만나면 90명 정도는 (계속고용 시) 임금이 조정돼도 좋다고 한다”며 “남은 시간은 임금체계 논의에 더 집중한다면 합의할 수 있는 장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노사 간 입장 차이는?
경영계는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금은 직급과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연공급(호봉제)가 일반화돼 있어 계속고용시 기업 부담이 크다는 논리다. 특히 2013년 법정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와 직무·성과급제 개편 등을 제도화하지 않아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고 본다. 즉, 2013년의 패착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정년연장에 따른 직무·성과급 임금체계 개편은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밝힌다. 65세까지 정년연장 할 경우에도 동일한 임금 테이블과 인상률을 적용하거나, 65세까지 정년이 연장된 구간에 대한 임금 인상은 노사 합의로 별도 인상률을 적용하자고 주장한다. 김성희 L-ESG 평가연구원 원장은 “임금체계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고용 논의를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고도 말했다.
―청년 일자리와의 충돌에 대한 노사 간 입장 차이는?
노동계는 ‘청년 일자리 위축’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본다. 노동계 입장과 닿아 있는 주장을 하는 김성희 L-ESG 평가연구원 원장은 “서구 대부분 연구에서 숙련과 경험의 차이로 직무 성격에 차이가 있어, 청년 고용을 위축시키지 않는다고 진단한다”며 “국내 연구에서도 보완관계라는 연구 결과가 더 많다”고 했다. 또 노동시장 직무 현황을 보면, 고령층이 진입하는 일자리와 청년 일자리의 성격이 다르고, 선호하는 직종과 업무 간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경영계는 정년연장 시 청년 일자리 감소가 필연적일 것이라고 본다. 동시에 정년 60세 의무화로 청년 고용이 감소했다는 각종 연구 결과도 함께 제시한다. 임영태 경총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심각한 청년 취업난을 더 악화해 세대 간 갈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 먼저 정년연장을 적용하는 안’에 대한 노사 간 입장 차이는?
노동계는 찬성한다. 한국노총은 경영계의 수용성을 고려해 300인 이하 중소기업부터 우선 시행한 뒤 300인 이상·공공부문으로 확대하는 안을 경사노위 회의에서 제안했다.
경영계는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정년연장의 부담이 다르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현재 기업에서 정년제를 운용하는 비중은?
고용부의 ‘2023년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를 보면 2023년 6월 말 기준 종사자 1인 이상 표본 사업체 171만9502개 중 정년제를 운용하는 사업체는 21.2%인 36만3817개다. 300인 미만의 경우는 21%에 그쳤으나 300인 이상 기업은 94.6%를 차지했다. 사업체가 클수록 정년 운용 비율이 높은 셈이다.
―현재 법적 정년이 60세여도 그 전에 퇴직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지?
그렇다. 지난해 5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를 보면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평균 52.8세로 집계됐다. 정년까지 정규직 일자리를 유지한 고령층(정년퇴직형+정규직 유지형) 비중도 14.5%에 불과한 실정이다. 다만 법적 정년이 연장되면 더 늦게까지 일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마련된 것이어서 이 영향으로 평균 퇴직 연령도 같이 상향될 가능성이 크다.
―계속고용 관련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계속고용과 관련해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총 9건이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8월 대표 발의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 8건은 모두 야당에서 발의했다.
김 의원 안은 저출생 정책과 연계해 다자녀 근로자를 대상으로 재고용 의무를 지운 법안이다. ‘자녀 2명 이상은 1년, 3명 이상 근로자에 대해서는 2년 이상의 기간까지 재고용 노력을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법안은 민간은 권고사항으로 두고, 공공부문은 의무 도입하도록 했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도 다자녀(2명 이상) 근로자의 정년을 65세 이상으로 연장하는 안을 담았다. 300인 이상과 공공기관은 2026년 1월1일부터, 300인 미만은 2027년 1월1일부터로 기간을 제시했다.
나머지 여당 안은 65세 이상으로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시행일과 적용 사업장 규모 등 세부 내용은 법안별로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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