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에세이는 산책에서 시작해 다음 산책으로 이어진다. 날씨가 조금 풀린 지난 주말 중구 정동길로 나갔다. 정동길은 보도블록도 건물도 빨간색 벽돌 천지라서 약간 놀이터 같은 느낌을 주는 동네다. 이 동네 언제 왔었지 하고 돌아보니 연극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관람 때 와보고 처음이다. 최근에는 이렇다 할 문화체험을 못하고 지냈기에 마음이 몹시 황폐해졌음을 느끼곤 했다. 평소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던 정동감리교회가 눈앞에 있다. 본당 문을 밀고 안을 들여다봤는데 예배 중이어서 조용히 문을 닫았다.
길거리 샌드위치 가게로 들어갔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 단위의 시민들이 보였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책을 좀 읽다가 바깥으로 나왔을 때 걸어가던 사람들이 커다랗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 그러고 보니 소리 내어 웃은 지가 언제인지, 나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인데 말이다.
이화여고 예원학교를 지나 가톨릭 프란치스코회 건물을 지난다. 그리고 목적지인 경향신문사 건물의 경향아트힐에 도착! 1960년대 김수근 건축가가 지은 이 건물은 매우 특이하다. 둘로 구분된 아래와 위 구조가 전혀 다른 상이한 모양의 블록을 쌓아놓은 것 같다. 이 건물에 있는 시네마테크에서 브뤼노 뒤몽 감독의 ‘트웬티나인 팜스’와 ‘플랑드르’ 두 편을 내리 감상할 계획이었고 무사히 두 편 다 봤다. 보통 영화를 보면 초반 삼십 분 정도는 자다 깨는 습관이 있는데 이 영화들은 그럴 수 없었다. 몹시 불편했고 문제적이었다. 나는 기진맥진한 채로 신문로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세상이 어떻든 영화를 계속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인간을 주제로 근본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뉴욕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이란 책이 있다. 1895년 첫 뉴욕공공도서관이 문을 연 후 지금은 뉴욕에 90여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다고 한다. 걷다 보면 20분마다 도서관 하나씩을 발견할 수 있다는데, 1940∼1950년대 도서관으로 보낸 이용자들의 질문을 모은 책이다. 온라인 질문이 불가능했던 때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러 다들 도서관으로 갔던 걸까. 그중 가장 대답하기 어려워 보였던 질문 하나가 생각난다. “도서관에 ‘인간’에 관한 책이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한 사서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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