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면식도 없는 이웃을 일본도로 살해한 30대 남성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 동기와 내용, 방법의 잔혹성 등을 비춰보면 죄질이 극도로 불량하다”며 무기한 사회 격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중국 스파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저지른 이번 살인으로 9살, 4살 두 아들은 아버지를 영원히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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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고귀한 절대적 가치”... 1심 법원의 판단
7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권성수)는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백모(38)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이날 오후 2시30분 시작 예정이었던 선고 공판은 백씨가 “일신상의 이유”로 불출석하면서 2시간 30분가량 지연됐다. 재판부는 구치소 상황을 확인하고 휴정을 선언했고, 오후 5시가 돼서야 백씨가 법정에 출석했다.
이날 재판부는 “살인은 사람의 생명이라는 고귀하고 존엄한 절대적 가치를 고의적으로 해하여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중대 범죄”라며 “피해자는 자신이 공격받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극심한 공포와 고통 속에 사망했다”고 지적했다. 망상장애라는 정신 상태를 감안하더라도 범행의 잔혹성과 책임이 엄중하다고 판단, 심신미약을 이유로 한 감형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기징역 선고에 유족들은 방청석에서 “억울하다.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거냐”며 오열했다. 앞서 피해자의 아내는 “잠자기 전 유일한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담배를 피우러 잠시 나갔던 건데 그날 밤 나갔다 온다는 뒷모습이 마지막이 될 거라곤 차마 꿈에서도 상상도 못했다”며 “아이들이 엄마마저 없는 삶에 서러워할까봐 죽지도 못하고 미칠 것 같다”고 호소했다.
이날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하자 피해자의 아버지는 “사형 선고를 하지 않은 것은 진짜 피해자를 위한 재판인지 가해자를 위한 재판인지 이해가 안 된다”며 “이 나라가 범죄의 나라가 되어선 안 되지 않느냐“고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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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상이 부른 무차별 살인… ‘스파이 처단’ 망언
지난해 7월29일 오후 11시22분,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 담배를 피우러 잠시 나온 김모(44)씨는 순식간에 일본도를 든 이웃을 마주했다. 백씨가 휘두른 날 길이 75㎝, 전체 길이 102㎝의 일본도에 얼굴과 어깨 등을 10여차례 공격당했다. 김씨는 피를 흘리며 5m가량 이동해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청하려 했으나 백씨가 따라와 재차 공격했고, 결국 구급차 안에서 과다출혈로 숨졌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백씨는 2023년 10월부터 ‘중국 스파이가 대한민국에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같은 아파트 주민이었지만 개인적 친분이 없던 김씨를 자신을 감시하는 스파이라고 여겼다. 수사 과정에서 “김건희와 한동훈, 윤석열, CJ가 3년 동안 저를 죽이려 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재판 과정에서 정신감정 결과 범행 당시 망상장애 상태였다는 의료진 소견이 나왔지만, 검찰은 지난달 21일 결심공판에서 사형을 구형했다.
◆ 도검 소지 허가 제도의 허점... 법 개정 착수
이번 사건은 도검 소지 허가 제도의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 백씨는 범행 준비를 위해 지난해 1월 일본도를 구입하면서 ‘장식용’이라고 허위 신고해 소지 허가를 받았다. 현행 총포화약법상 알코올·마약중독자나 정신질환자, 강력범죄 전과자 등은 총포·도검 소지 허가를 받을 수 없지만, 당시 백씨는 정신 병력이나 범죄 경력이 없어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경찰청은 지난해 8월 소지 허가를 받은 도검 8만2641정에 대한 긴급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정신질환이나 성격장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허가를 일정 주기로 갱신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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