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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1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12·3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대통령 탄핵정국과 관련해 “집권여당으로서 책임을 깊이 통감한다”며 사과했다. “비상계엄 선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납득할 수 없는 조치”라고도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최근 행보를 보면 말 따로 행동 따로다. 국민의힘 전현직 지도부가 수감 중인 윤석열 대통령을 잇달아 면회하고 윤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가 일부 친윤(친윤석열) 의원들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 몇몇 의원은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강성 지지자들과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게 “책임을 통감한다”는 당의 모습인가.
권 원내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비상계엄 발동의 책임을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 입법 폭력, 헌정 파괴’ 탓으로 돌렸다. 그는 “29번의 연쇄 탄핵, 23번의 특검법 발의, 38번의 재의요구권 유도, 셀 수도 없는 갑질 청문회 강행, 삭감 예산안 통과, 이 모두가 대한민국 건국 이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일”이라며 “국정 혼란의 주범, 국가 위기의 유발자, 헌정 질서 파괴자는 바로 민주당 이재명 세력”이라고 질타했다. 거대 야당의 폭주로 국회가 파행하고 국정이 마비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일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비상계엄에 대한 이런 관점은 장차 국민의힘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선택했던 투표층을 강성보수층, 온건보수층, 중도보수층으로 나눠 ‘계엄선포 원인이 야당의 비협조 때문’인지를 물었더니 공감 정도가 각각 8.64점, 6.89점, 5.12점(10점 만점)으로 집계됐다. 중도보수층 절반은 “비상계엄이 야당 탓”이라는 국민의힘 관점에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박빙 선거의 승부를 가르는 중도층과 따로 가서는 연전연패다.
권 원내대표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고 제왕적 의회의 권력 남용도 제한할 수 있는 분권형 개헌’을 촉구했다. 비상계엄 사태는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적으로 드러냈다. 대통령 권한을 줄이고 대통령 권력과 국회 권력이 충돌하는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장치가 헌법 차원에서 마련돼야 한다. 여당은 개헌 카드를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국면전환용으로 사용해선 안 될 것이다. 개헌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정치적 유불리 계산을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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