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러·우크라戰 특수 누리고 있어
당장 美와 협상 필요성 느끼지 못 해
트럼프, ‘핵우산’보다 자체 핵무장이
美예산 절감에 도움 된다고 생각해
안보분야 새 판 짜는 계기될 수 있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7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비핵화를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칭하면서 촉발한 논란을 일단락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공식 외교문서로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한국 정부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민간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한반도전략센터장의 생각은 달랐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은 ‘위기이자 기회’라고 했다. 정 센터장은 “사실상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으니 국제사회가 폐기하려는 것”이라며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과 완전한 비핵화는 모순되면서도 통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비핵화는 장기과제로 추진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상황이 더 악화하는 걸 막기 위한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과의 인터뷰는 5일과 17일 대면 및 전화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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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스탠스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짧은 시간에 해내고자 했던 1기 때와 달리 2기 트럼프는 장기 목표로 삼은 듯하다. 트럼프 내각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발언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은 단기간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북한 입장에서 핵보유는 김정은의 최대 업적이다. 그렇다고 미국 입장에서 절대선(絶對善)으로 간주되어 온 ‘비핵화’를 포기하면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하다.”
―15일 한·미·일 외교회담서 ‘북·미 대화’를 언급했다.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비핵화를 두고 미 행정부 내에서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면 미국은 실현 불가능한 ‘북한 비핵화’ 목표를 내려놓고, 핵포기보다 핵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북·미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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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가 아닌 스몰 딜로 가나.
“지금 북한은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호리병 밖으로 나온 지니’와 같다. 미국 내 현실주의자 사이에선 북한의 비핵화는 허무맹랑하고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미 대통령이 4년의 짧은 임기 동안 완전한 비핵화를 이뤄내기는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무력이 고도화하고 다탄두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개발하면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는 한계에 직면한다. 군비통제가 현실적 접근일 수 있다.”
―협상에 앞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인가.
“북한은 5개국으로 이뤄진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인도, 파키스탄 같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을 비롯해 트럼프 핵심 측근들 입장과 일치한다.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현실로 인정하고 북한과 협상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패한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그때하고는 차이가 있다. 하노이 때는 미국 행정부 내에서 북핵 협상에 대한 자체적 합의가 안 돼 있었다. 일부 강경파는 북한의 핵을 포함해 생화학무기까지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북한은 스냅백(합의 후 위반 시 제재 복원) 조항을 넣어 타협하려 했지만 미 행정부 강경파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금은 ‘노(NO)’할 사람이 없다. 주변이 충성파로 채워지면서 언제든지 스몰 딜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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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에 북·미 대화가 열릴까.
“쉽지 않다.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특수를 누리고 있다. 병력 파견에 따른 반대급부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석유 등 물자 지원에 탄약 수출로도 돈이 들어온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는 탄약의 60%가 북한산이라는 추정도 있다. 협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북·러 밀착으로 얻는 구체적 이익은.
“대규모 외화도 중요하지만, 북한이 목매는 정찰위성 확보 위한 핵심 기술을 러시아가 대거 보유하고 있다. 위성 운용 소프트웨어나 고성능렌즈 등 러시아의 도움이 절실하다. 북한 스스로 핵추진잠수함을 개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과거 러시아가 인도에 핵추진잠수함 빌려준 적도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을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미 연합훈련 축소 등 대응력 약화 우려된다.
“트럼프는 한·미 훈련을 꾸준히 “돈 낭비”라고 주장해왔다. 2018년 6월과 2019년 2월 1·2차 북·미 정상회담 때 늘 견지했던 생각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도 대놓고 그런 얘기를 했을 정도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2개월 후 한·미 연합훈련이 중단·축소됐다가 미국 내부 반발로 재개하기도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고도화하는데도 한·미 훈련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취하면 한국 내에서 미국의 확장억제전략에 대한 신뢰가 약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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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방위비 분담도 조정될까.
“과거 미국은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던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전통적 지도자가 아니다. 잘사는 한국을 왜 지켜줘야 하느냐고 불만이다. 트럼프는 가장 먼저 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는 등 국제규범보다 미국의 국익을 중요시한다. 계산법이 다르다. 한국이 방위비 대폭 인상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부분 철수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조건부 핵보유를 주장하는 이유는.
“트럼프 입장에서 한국에 많은 미군을 파견하는 건 돈이 든다. 트럼프는 한국이나 일본이 북한이나 중국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체 핵무장하는 것이 미국의 예산 절감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재래식 무기 기준으로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5위로 북한(36위)에 압도적 우위다. 핵이 없다면 남북한 힘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가능성은 있나.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하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조선업 분야 협조를 구했다. 1980년대만 해도 미국은 해양국가, 중국은 대륙국가로 분류했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선박제조능력은 중국 1위, 미국은 19위다. 전반적 군사력은 앞서지만, 해군력에는 미국이 중국에 밀린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때 미국은 물리적으로 힘들다. 전투과정에서 항공모함이 파손되면 한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조선업은 해군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미국이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묵인하는 대신 한국은 대만 유사시 미국에 대해 전폭적으로 군수, 의료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트럼프가 안보 자강론을 도와주는 셈인가.
“그런 측면이 크다. 미국의 경제 상황이 과거 소련 해체 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탈냉전으로 인해 중국은 급성장했고, 미국 산업의 공동화가 심해졌다. 조선업뿐 아니라 반도체만 봐도 한국과 대만이 압도적 우위다. 전 세계 가전제품은 한국이 휩쓸고 있다. 최첨단 무기를 빼고 미국이 경쟁력을 가진 건 애플뿐이다. 트럼프의 최대 목표는 미국의 경쟁력 회복이다. 다른 나라의 안보는 관심 밖이다.”
―동북아의 연쇄적 핵개발이 우려된다.
“미국, 중국 등 주변국의 반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연쇄적 핵개발 경쟁을 우려하는 건 비확산론자들의 주장이다. 기존 NPT 체제의 한계는 명확하다. 중국과 북한이 핵무기를 늘려가는 마당에 한국과 일본이 비핵 국가로 남아야 한다는 건 중국과 북한에 유리한 논리다. 한국은 북한,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는 힘의 균형이 안정적인 동북아 평화 시나리오다.”
―비핵화 협상서 코리아 패싱 우려는.
“탄핵 정국으로 미국과 정상급 대북정책을 협의할 상황이 아니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고 조기 대선이 치러지건 대통령이 복귀하건 트럼프와 빅딜에 나서야 한다. 트럼프가 기존 미국의 확장억제정책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보 분야에서 새판을 짤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먼저 만나 한반도 안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 걱정이지만,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 특수로 미국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다는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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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한·미 관계 설정 방법은.
“미국이 북·미 대화 가능성을 열어놨지만, 우리가 먼저 트럼프와 대화에 나설 수 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한·미 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해 건건이 대응하기보다는 핵잠재력 확보를 위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한국과 일본의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한 한·미·일 협력, 미국의 해군력 현대화를 위한 한·미·일 협력 등 포괄적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는 서태평양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는 발판이 되고,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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