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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정을 위한 정부와 의료계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각 대학이 100% 자율로 결정하는 방안을 내놔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는 어제 보건의료인력 수급 추계위원회 설치 법안과 관련해 이런 내용을 부칙에 담은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추계위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심의에서 증원 규모를 결정하지 못할 경우, 대학 총장이 모집 인원을 4월30일까지 변경할 수 있게 하는 자율권을 준 것이다. 각 대학 결정에 따라 내년도 의대 증원 규모는 최소 0명, 최대 2000명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입시 일정상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내년도에 한해 대학 자율 증원을 시행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했다. 고육지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국회가 입법으로 추진 중인 ‘의료인력 추계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추계위 구성과 권한을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의료계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만큼 의료 면허 소지자가 절반을 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환자·시민단체들은 공정성 담보 차원에서 적절한 안배가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추계위가 최종 의사결정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의료계 주장은 지나치다는 비판이 많다. 당장 추계위가 꾸려져도 결과가 나오려면 최소 3∼4개월은 걸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의료계는 ‘100% 대학자율’ 방안에 반대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각 대학에 던지는 꼴이고, 결국 의대 증원 기조를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어제 각 대학 총장에게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3058명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의 협조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의협 강경파들은 “내년엔 아예 의대생을 한 명도 뽑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의대 증원분을 둘러싸고 입장차가 있는 총장과 의대 사이의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달 말까지 의대 정원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의·정 갈등과 의료 공백이 1년 더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작지 않다. 갈수록 고통이 가중되는 환자·국민을 생각한다면 의료계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때가 됐다. 환자 곁을 떠난 의사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의료계는 대학 자율로 추진하는 방안을 놓고 진지한 논의를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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