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노년을 보내고 있는 김모(69)씨는 겨울철 추운 날씨에도 아침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어느날 아침 갑작스럽게 한쪽 눈이 흐릿해지고 시야가 좁아지는 증상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았다.
걱정된 김씨는 안과를 방문했고, 검사 결과 ‘망막혈관폐쇄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겨울철에는 기온이 낮아지면서 혈압이 급격히 변동할 수 있고, 이로 인해 혈전이 생겨 망막 혈관을 막는 경우가 있다”며 “치료가 늦었다면 시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곧바로 치료를 받아 시력을 일부 회복할 수 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겨울철 혈관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후 그는 추운 날씨에 갑작스러운 야외활동을 피하고, 실내에서 충분히 준비 운동을 한 후 밖으로 나가는 습관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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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는 뇌졸중, 심근경색 등 혈관 질환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추운 날씨로 인해 혈압이 급격히 변동하면서 혈전이 형성되고, 이 혈전이 혈관을 막아 심각한 응급질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로 눈의 망막 혈관이 막히면 ‘눈 중풍’이라고 불리는 망막혈관폐쇄증이 발생할 수 있다. 치료가 늦어지면 실명에 이를 가능성이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망막혈관폐쇄증은 주로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증 등 전신적인 혈액 순환 장애를 유발하는 질환과 관련이 깊다. 망막에 혈액을 공급하는 망막 동맥이 막히면 ‘망막동맥폐쇄’가 발생하고, 망막에서 심장으로 혈액을 돌려보내는 망막 정맥이 막히면 ‘망막정맥폐쇄’가 생긴다. 망막정맥폐쇄는 망막 동맥과 정맥이 교차하는 부위에서 뻣뻣해진 동맥이 정맥을 압박하면서 혈액 흐름이 방해받고, 이로 인해 혈전이 형성되어 폐쇄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안과 박효송 교수는 “망막혈관폐쇄는 혈관이 막힌 위치와 범위에 따라 중심망막동맥폐쇄, 중심망막정맥폐쇄, 분지망막동맥폐쇄, 분지망막정맥폐쇄 등으로 나뉜다”며 “이 질환은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특징이며, 다양한 합병증과 급격한 시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어 신속한 진단과 치료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망막혈관폐쇄의 주요 증상은 갑작스러운 시력 저하, 시야 장애, 사물이 일그러져 보이는 증상 등으로 나타난다. 특히 망막정맥폐쇄는 초기 치료가 늦어지면 황반부종, 유리체출혈, 녹내장 등의 합병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심한 경우 영구적인 시력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박 교수는 “한쪽 눈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반대쪽 눈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면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만약 시력이 갑자기 저하되거나 흐릿해지는 증상이 지속된다면 즉시 병원을 찾아 정확한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망막혈관폐쇄증은 안저촬영, 빛간섭단층촬영(OCT), 형광안저조영술 등을 통해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망막동맥폐쇄의 경우 발병 초기에는 망막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어 더욱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치료법은 폐쇄된 혈관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망막동맥폐쇄는 폐쇄 범위가 넓을 경우 치료 효과가 제한적이지만, 안압을 낮춰 혈류를 회복시키려는 시도를 하거나 혈전용해제 치료 및 수술적 치료가 진행되기도 한다. 망막정맥폐쇄의 경우 안내 주사술, 레이저 치료, 수술 치료 등을 통해 황반부종이나 유리체출혈 같은 합병증을 치료한다. 녹내장 예방을 위한 지속적인 추적관찰도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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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막혈관폐쇄증은 단순히 눈의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혈관 건강을 경고하는 신호일 수 있다.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증 등 만성질환이 조절되지 않으면 다른 부위에서도 혈관 폐쇄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 망막혈관폐쇄가 발생한 경우 뇌졸중, 심장질환 등 생명을 위협하는 전신질환 여부를 평가하고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 교수는 “망막혈관폐쇄증을 계기로 심각한 전신질환이 발견되는 사례가 많다”며 “특히 중심망막동맥폐쇄 환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망막혈관폐쇄증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금연과 금주는 기본이며,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고 혈압과 혈당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나트륨 섭취를 줄이고,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심뇌혈관질환의 위험 요인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박 교수는 “망막혈관폐쇄증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시력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 정기적인 안과 검진을 통해 조기 발견과 치료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력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긴다면 지체하지 말고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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