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하게 재개발한다는 소식
낙후한 환경개선은 반갑지만
개발과 보존의 공존은 안 될까
홍제동 인왕산 아래 개미마을이 있다. 개미마을은 인왕산을 등산하는 진입로 중 하나인 달동네이다. 6·25 때 피난민들이 이곳에 자리 잡게 되어 형성된 마을이라고 하는데, 비탈이 심하고 차편도 7번 마을버스 하나뿐이어서 생활하기엔 참 불편하게 보인다. 눈이 내리는 날 에 개미마을을 간 적이 있는데, 위태롭게 올라가는 버스는 금방이라도 뒹굴 거 같았다.
서대문 7번의 버스가 지나는 이 마을 정류장 이름은 참 서정적이다. 오동나무 앞, 버드나무가게, 삼거리 연탄…. 비탈길을 오르면서 두리번거리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정류장 이름 때문이기도 하다. 오동나무가 어디 있을까? 버드나무가 있는 가게는? 삼거리에 연탄집이 있는 걸까? 이런 기대를 하게 되지만 그런 곳은 찾기가 어렵다. 아마 오랜 시간이 이름만 남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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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곳이 인디언타운이라고 불렸는데, 가건물을 짓고 사는 모습에서 인디언들을 연상한 것 같다. 그러나 주민들의 불편한 마음을 생각해서 지금은 부지런하게 사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개미마을’이다. 이곳은 생활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주민들의 대다수가 기초생활수급자거나 노인층이 많다. 그러나 1950년대나 60년대의 오래된 골목을 잘 보존하고 있는 아주 귀한 곳이다.
이 마을의 버스 종점 바로 옆에 공중화장실이 있다. 등산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화장실이 없는 주민들의 공용 시설이다. 너덧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큰 신을 끌며 공중화장실에 다녀가는 뒷모습이 참 기특해 보여서 한참 서서 바라보았다. 이 아이가 동화 속에서 날아온 것 같은 것엔 또 하나 이유가 있다. 이 마을의 벽면에는 벽화가 예쁘게 그려져 있다. 시커먼 돌계단을 비누 거품처럼 퐁퐁 따라 오르는 빨간 하트 문양은 보는 이들을 경쾌하게 한다. 더구나 큰 입을 벌리고 그 하트 문양을 삼키려는 파란 고래의 모습까지 정답게 그려져 있다.
이런 따뜻하고 아련한 정서 뒤에 최근엔 안타까운 기사가 떴다. 지난 11일 이곳 가건물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해서 80대 남성 한 명이 사망했다. 좁고 비탈진 개미마을의 전경을 생각하면 소방차의 진입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건물이니 얼마나 쉽게 탔을까. 가난과 함께 한 노인이 화마의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이런 쓸쓸한 뉴스 기사를 보면서 2023년 4월의 인왕산 산불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내가 연희동에 살고 있었기에 그 긴박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면서 개미마을 주민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헬리콥터가 30초 간격으로 마당 위를 지났는데, 한강에서 물을 퍼서 헬리콥터로 나르는 장면이었다. 스마트폰에서는 안전 문자 알림이 연거푸 울렸고, 매캐한 냄새가 제법 떨어진 우리 마당까지 나는 것 보니 심상찮은 불이었다. 개미마을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다는 소식도 급박하게 올라왔지만, 산 너머에서 연기가 하늘로 뻗쳐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개미마을 사람들의 긴장되는 대피가 눈앞에 그려져서 마음이 초조했었다.
봄이 되면 곳곳에서 산불 소식이 들려오므로, 여러 가지 대비가 취약한 개미마을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이것 못잖게 염려되는 건, 우리의 삶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이 개미마을의 개발이다. 최근 이곳이 ‘신속통합기획주택 재개발 후보지’로 확정되었다. 신속통합기획주택 재개발은 민간이 주도하는 재개발·재건축 초기 단계부터 서울시가 개입해 신속한 사업 추진을 지원하는 제도라고 한다.
개미마을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는 한량없이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지만, 아주 희귀한 풍경을 담고 있는 개미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은 기록적인 차원에서도 반갑지만은 않다. 그곳 주민이 아니어서 가지는 이기심이겠지만, 이런 서정적인 곳이 고스란히 사라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린 시절 향수를 느낄 때면 찾아와 마음으로 오래 품고 싶은 이곳. 나의 머리로는 보존과 개발을 함께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지만, 좀 더 현명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자꾸 기대하게 된다.
천수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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