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연구관 국적 논란, 정치권도 가세
다이빙 주한중국대사, 심각한 우려 표명
“국제안보·경제 등 부정적 영향 우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헌법재판소 소속 헌법연구관들이 중국 국적이라는 가짜뉴스가 퍼지자 여당에서 헌법기관의 공무원 채용 시 국적 검증을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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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 반중(反中) 정서가 고조되며 한중 관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논란은 단순한 국내 정치적 문제를 넘어 국제 안보와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헌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몇몇 헌법연구관의 이름이 중국인으로 느껴진다며 이를 비방하는 글이 수백 건 올라와 있다.
한 게시자는 “이름만 봐도 중국인이네. 한국 국적도 아니면서 왜 남의 나라 헌재에서 반국가 간첩 짓거리를 하고 있느냐”며 “대체 여기 몇 명의 화교 출신이 있을지 소름이 끼친다”고 적었다. 또 다른 게시자도 “탄핵심판 TF에 짱깨가 합류했다”며 “연구관들의 출생지와 국적을 다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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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헌재 공보관은 브리핑에서 발음이 샜다는 이유로 중국인이라는 가짜뉴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 공보관은 서울 출생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공보관들에게는 이름의 영문 표기가 한국식 표기가 아니라며 ‘화교’라는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여권은 소문을 확산시키는 데 한몫했다. 국민의힘은 당 차원에서 “헌법연구관들의 경력과 배경, 구성이 어떻게 되느냐”며 따지는 논평을 냈다.
나경원 의원은 더 나아가 헌재나 감사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과 국가기밀 취급 기관이 공무원을 임용할 때 국적 검증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나 의원은 “헌재 소속 연구관 등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특별히 요구되는 자리이므로 대한민국 국적자만 임용돼야 한다”며 “외국 국적자가 업무를 하면 편향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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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중국(인) 때리기’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고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명동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중국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당시 시위대는 ‘윤 대통령 탄핵 반대’, ‘노 차이나(NO CHINA)’ 등의 손팻말을 들었다.
지난 14일 영화 캐릭터 ‘캡틴 아메리카’ 복장으로 중국대사관 침입을 시도한 윤 대통령 지지자는 극우 인터넷 매체에서 낸 ‘중국 간첩 99명 체포’ 기사의 제보자라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한국 내 반중 감정 확산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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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 주한중국대사는 전날 SNS에 “김석기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만나 한국 내 일부 세력이 루머를 퍼뜨리고 반중 감정을 조장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다이 대사의 발언은 국내에서 심화하는 반중 현상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입장이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중국 정부가 윤 대통령 탄핵 국면과 관련해 한국의 내정이라며 입장 표명을 자제해 온 만큼, 이례적인 대응이라는 평가다.
앞서 주한중국대사관은 지난 8일 한국 내 ‘혐중·반중 감정’에 대해 “한국 내정 문제를 중국과 무리하게 연계시키는 것을 반대한다”며 “한국 측이 재한 중국 국민의 안전과 합법적 권익을 확실히 보장해 주길 바란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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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반중 정서 확산이 결국 한국의 국제 안보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최근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으로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의 주요 외교·경제 파트너이자 외교적 돌파구로 활용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중국 내 반한(反韓) 감정이 커지면 한국 기업들이 민간 차원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대중(對中)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한중 관계 악화는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김영인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사드(THAAD) 배치 당시 중국 정부가 한한령(한류 제한령)과 같은 경제적 제재를 가한 전례를 고려하면 현재 상황이 악화될 시 경제적·문화적으로 유사한 조치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며 “정치외교, 경제 등 국익 차원에서 큰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만큼 국내 정치적 이슈와 대외 관계를 분리해서 접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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