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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정의 첫 국정협의회가 빈손으로 끝났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우원식 국회의장,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어제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 연금개혁, 반도체특별법 등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 탄핵정국이 시작된 지 두 달이 넘어서야 간신히 최고 협의체가 가동됐지만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하나같이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사안인데도 여야는 정략과 정쟁에 매몰된 채 네 탓 공방으로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국민 보기에 부끄럽지 않나.
가장 화급한 과제인 추경이 기약 없이 표류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이날 협의회에서 추경 편성에 공감대가 형성됐다지만 규모와 편성 방향을 둘러싼 이견은 여전하다. 민주당은 35조원의 추경안뿐 아니라 13조원이 들어가는 1인당 25만원 소비쿠폰사업까지 고집해왔다. 나라 살림은 안중에 없고 대선용 선심 쓰기에 집착한다는 것을 빼고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추경은 심각한 세수결손 상황을 고려해 규모를 책정하고 현금살포 대신 성장동력 확충·일자리 창출·취약계층 지원에 집중하는 게 맞다. 경제지표는 온통 빨간불이 켜졌고 오랜 내수침체로 민생이 그야말로 도탄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경은 때를 놓치면 효과가 반감되고 그 피해는 국민 몫임을 명심해야 한다.
발등의 불인 반도체특별법도 연구개발인력의 ‘주 52시간 근로 예외’ 조항에 발목이 잡혀 아무 진전이 없다. 최 대행이 “(반도체법에) 근로시간특례조항이 포함돼야 하며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했지만, 이 대표는 “국민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주요국들은 분초를 다투는 세계 반도체 전쟁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데 한국만 주 52시간의 족쇄에 묶여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이 대표가 실용주의·성장 우선을 약속했지만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가 미래에 걸린 연금개혁 역시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다. 여야는 보험료율(내는 돈) 13% 인상만 접점을 찾았을 뿐 소득대체율(받는 돈)과 연금 통합 등 구조개혁방안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정파 이익을 민생과 국익보다 우선시할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탄핵정국·국정 공백 속에 경기침체와 미국발 관세전쟁 등 대내외 악재가 쏟아지며 국가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지 않은가. 여야의 대승적 합의가 절실하다. 지금도 한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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