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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나오는 중세 마을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곳을 가야 한다. 사프라는 스페인의 남서부 지방에 있는 인구 1만6000여 명의 한적한 마을이다. 마을의 기원은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인이 에스파냐를 침공한 시절인 로마 히스파니아 시절에 로마인들은 에스파냐 전역을 연결하는 거대한 도로망인 ‘비아 데 플라타(銀의 길)’를 개척했다. 도로가 이 도시를 감싸듯 지나가면서 마을이 처음 만들어졌다.
그 후 15세기 무어인들이 이곳을 지배하게 되면서 지금의 도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무어인들은 당시 빈번했던 침략과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사프라 알카사르(城)를 먼저 짓고 성벽을 둘렀다. 성벽을 끼고 마치 거북이 껍질 모양처럼 좁은 거리가 만들어졌다. 지금도 15세기의 돌담이 여전히 마을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으며, 성(城)의 8개의 문 중 3개가 여전히 그대로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우수하다. 무어인들이 아프리카로 돌아간 이후에는 페리아(Feria) 공작 가문의 성으로 사용되었다. 사프라 성벽과 문, 거리, 광장 등의 구역은 국보급 문화재에 붙이는 등급인 BIC(Bien de Interés Cultural)을 받았을 정도로 국가에서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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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프라 성 위에 올라 성벽을 따라 걸어 보았다.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마치 중세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거리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꼬불꼬불하다. 집은 나지막하며, 마을 곳곳이 정겹다. 시간에 멈춘 듯한 곳에서 망중한을 제대로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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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프라 성은 보존 상태가 좋아서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은 국영 호텔인 파라도르 호텔 체인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하룻밤 묵어가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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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는 마을에서 가장 대표적인 길인 칼레 세비야를 걸어보았다. 이곳은 마을 인구도 얼마 안 되고, 관광객들이 많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저녁 무렵에도 한산했다. 아마도 스페인 사람들의 저녁은 9시나 되어야 시작되기 때문이리라. 필자가 새로운 스페인의 도시를 가면 늘 그랬듯이 깔끔해 보이는 한 바에 들어가서 타파스와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시장기를 달랬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스페인의 도시가 지겹다면 자은 소도시 사프라에 가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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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 스페인전문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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