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계 논의 부족, 관례 판례도 전무
사법부, 대선 전 李 유무죄 확정해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9일 한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통령 임기 동안에는 기존에 기소된 형사사건 재판도 중단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한 패널이 현재 진행 중인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결과가 대선 행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묻자 “문제 되지 않는다”며 “(대통령이 되면 재판이) 정지된다는 게 다수설”이라고 답한 것이다. 이 대표 본인이 변호사로서 법률 전문가이니 개인적 견해를 제시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물론 법학계 및 법조계에서도 “대체 누구 마음대로 다수설이냐”며 황당해하는 반응이 나오니 이 대표에게 근거를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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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상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다’는 취지로 규정했다. 소추는 통상 검찰이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를 재판에 넘겨 죗값을 치르게 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다만 헌법 조문에 등장한 소추의 개념이 공소 제기 등 순전히 수사기관의 행위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기소 후 법원에 의한 재판까지 포함하는지를 놓고선 견해가 갈린다. 만약 전자가 옳다면 이미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재판은 계속된다. 임기 중 유죄가 확정되면 대통령직을 잃는 것이 마땅하다. 반대로 후자가 맞는다면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재판이 정지됐다가 퇴임 이후 재개된다고 봐야 한다. 선거법 위반은 물론 위증교사, 대장동 개발 비리까지 총 5가지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이 대표에게 헌법 84조의 해석론은 정치 생명이 걸린 사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법 84조의 소추 개념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는 결국 사법부의 몫이다. 문제는 범죄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례가 아직 없다 보니 법원이든 헌법재판소든 관련 판례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재판 중인 형사 피고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가정 자체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법학자 중에도 이 사안에 관해 깊이 연구한 이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다수설, 또는 소수설을 운운할 만큼 학계에서 논의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대표가 대체 어떤 근거에서 ‘헌법 84조의 소추 개념에 재판도 포함된다’는 의견이 다수설이라고 단정한 것인지 궁금하다. 이 대표의 입장을 지지하는 민주당 의원들 역시 ‘헌법학계의 다수설’이라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지 말고 헌법학 교과서나 논문, 또는 학자 이름 등을 특정해 자신들 주장을 뒷받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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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이 대표 발언을 놓고 국민의힘에선 ‘각종 여론조사 결과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하자 벌써 대통령이 되기라도 한 듯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김칫국부터 드링킹하는(마시는) 모습이 가관”이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다. 법원은 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은 물론 다른 사건들 재판도 서둘러 진행해야 한다. 대선 이전에 이 대표의 유무죄 여부가 확정된다면 헌법 84조 해석을 놓고 논쟁을 벌일 필요도 없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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