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국산 철강 후판(두께 6㎜ 이상 두꺼운 철판)에 최대 38%의 잠정 덤핑 방지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국내 철강 업계가 제한적이나마 실적 개선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내달부터 수입 철강에 25% 관세 부과를 예고해 미국 이외 시장에서 공급 과잉이 우려되고 있다.
상상인증권은 21일 중국산 철강 후판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정부 결정과 관련해 국내 대형 업체들의 실적 개선 폭은 제한적이지만 업계 전반의 점진적인 이익 개선은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진범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철강업계에서는 20∼25% 수준의 관세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했다”며 정부의 27.9∼38.0%의 반덤핑 관세 부과는 예상보다 높다고 짚었다.
이어 “조선향 후판 수요는 지난해 전체 판매량 기준 56%를 차지하는데 조선업계가 원가 절감을 위해 중국산 비중을 20∼30% 수준까지 확대함에 따라 국내 철강업체들의 후판 내수 판매량은 점진적으로 감소해 왔다”며 “중국업체들을 대상으로 후판 반덤핑 관세 적용 시 국내 철강업계의 판매량 확대 및 판가 인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POSCO홀딩스, 현대제철의 후판 매출 비중은 별도 기준 13∼15% 수준으로, 연결 매출액 규모를 고려하면 후판의 가격과 판매량 개선에 따른 실적 확대는 제한적이라고 봤다.
김 연구원은 “동국제강의 경우 전체 매출액 대비 23% 수준으로 반덤핑 관세 부과에 따른 실적 개선의 폭은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라며 “업체별 조선사 간 후판 공급물량 및 방식, 가격 등 계약 조건이 상이한 만큼, 판가 및 판매 물량의 본격 개선에는 일정 시차가 소요될 전망”이라고 봤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전날 중국산 ‘탄소강 및 그 밖의 합금강 열연강판 후판 제품’을 예비 조사한 결과 덤핑 사실과 덤핑 수입으로 인한 국내 산업의 실질적 피해를 추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예비 판정했다. 이에 따라 무역위는 잠정 덤핑 방지 관세 27.91%~ 38.02% 부과를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건의하기로 했다.
정부 결정에 철강업계는 중국산 저가 후판의 공급 과잉으로 교란됐던 시장이 늦게나마 정상화되리라 기대하며 반겼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내달 25% 관세 부과를 예고해 한숨을 돌릴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달 12일부터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제 관세가 부과될 경우 아시아의 철강 공급 과잉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20일(현지시간) ‘트럼프 관세’가 실제 부과될 경우 미국 수출이 막힌 물량 일부가 이미 포화 상태인 아시아 시장에 유입되리라는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철강 생산을 빠른 속도로 늘려온 베트남의 응히엠 수안 철강협회 회장은 “새로운 관세 부과로 미국 수출이 막힘에 따라 더 많은 국가에서 생산된 철강이 베트남에서 판매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남미 철강업체들은 중국의 ‘밀어내기 저가 수출’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지난해 중국의 철강 수출 물량은 9년 만에 가장 많은 1억1000만t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 관세 부과에 예외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아직 협상 여지는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자리에서 호주에 대한 면제를 “많이 고려하겠다”고 언급함에 따라, 개별국가별 관세 여부가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은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발표했을 때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쿼터제에 합의하고, 대미 철강 수출에서 263만t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받아 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와 관련 박종원 통상차관보가 17∼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미 상무부 등에 철강·알루미늄 등 제반 관세 조치에 우리나라가 포함되지 않도록 요청했다고 21일 전했다. 산업부는 “우리 업계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 업계와 긴밀히 공조해 미국의 철강관세 부과 발표에 적극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