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 중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연세대 교수가 직위해제됐다. 하지만 피해자는 이 사실조차 학교로부터 전해 듣지 못했고, 수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12월엔 해외 학회에서 가해 교수와 마주치는 등 2차 피해를 겪었다.
22일 대학가에 따르면 연세대는 지난달 교원인사위원회를 열어 A교수를 직위해제했다. 지난달 16일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2부(부장검사 박윤희)는 A교수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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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출장서 시작된 성추행
연세대는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수사결과에 앞서 선제적으로 내부조사를 진행하고 이에 따른 징계조치를 지난달 완료했다”며 “세부사항은 개인정보인 점을 감안해 추가 공개가 어렵다”고 밝혔다.
A교수는 지난해 4월 해외 출장 중 자신의 지도를 받던 박사후 연구원 B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5월 고소를 당했다. 박사후 연구원은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학이나 연구소에 소속돼 일정기간 연구경험을 쌓는 이들을 말한다. B씨는 A교수 지도하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같은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 함께 해외 출장을 갔다.
세계일보가 입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A교수는 당시 술에 취한 상태에서 B씨의 손을 잡고 강제로 입맞춤하고, 신체 일부를 만지려 한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A교수를 밀치는 등 거부 의사를 표현했으나, A교수는 이를 무시하고 추행을 지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직후 A교수는 B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사과의 뜻을 전하는 등 혐의를 인정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귀국 후에도 A교수가 위계를 이용해 B씨를 괴롭힌 정황이 드러났다. B씨 측 진술에 따르면, A교수는 B씨에게 ‘연구 과제 선정과 논문 저자 등재가 모두 자신의 덕분’이라고 강조하며 출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선처를 부탁했다. B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자가면역성 뇌수막염에 걸려 한동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던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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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는 모른 척, 가해자는 버젓이 활동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검으로 사건이 송치된 후에도 피해는 계속됐다. 수사가 진행 중이던 12월, B씨는 해외 학회에서 A교수와 마주쳤다. B씨는 “학교 소속으로 참석한 A교수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아는 척을 했다”며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도 학교 이름을 걸고 학회에 참석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B씨는 “올해도 해외 출장이 예정돼 있는데 가해 교수가 참석 예정이라고 들어 두렵다”며 “가해 교수는 여태껏 사과 한마디 없다”고 호소했다. A교수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받지 않았다.
연세대는 “지난해 12월 해외 출장 당시는 A교수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나지 않은 시점”이라면서도 “현재는 직위해제된 상황이라 앞으로의 일정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B씨는 직위해제 사실조차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교무위원회 결정사항은 피해자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안다”며 “세부사항은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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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원 내 만연한 ‘침묵의 카르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2018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4%가 “연구생활 중 교수의 갑질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주요 갑질 유형으로는 인격무시 및 강압(17.3%), 일과 삶의 균형 무시(17.1%) 등이 꼽혔다.
피해 사실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거나 은폐되는 경향도 있다. 학위 취득이나 향후 진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신고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B씨 역시 “교수의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가 대학 안에서 비일비재하지만 학생들은 학교에서 낙인찍히거나 진로에 영향이 있을까봐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정두호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지부장은 “A교수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대학원 내 권력 구조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학 인권센터의 기능 강화와 전수조사 실시 등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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