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가사소송을 수행하면서 뚜렷하게 느껴지는 변화 중 하나는 이른바 ‘황혼이혼’의 증가입니다. 혼인 기간이 보통 반백년 가까이 되다 보니 통상 작성하는 서면의 양도 일반적인 사건의 두세 배입니다. 유책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사례가 훨씬 많은 것도 황혼이혼 소송의 특징입니다.
황혼이혼 당사자는 강산이 족히 4~5번 바뀌는 동안 상대방 배우자와 자녀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상대방의 뚜렷한 유책행위가 없다 할지라도 이혼을 시켜달라는 쪽과 설령 크나큰 유책행위를 저질렀을지라도 ‘내 생전에 결코 이혼은 없다’는 쪽의 대립 속에 법대에 앉아 있는 판사는 난감한 표정을 짓곤 합니다.
변호사로서 황혼이혼 소송을 수십건 진행했는데, 마침 작년 한 해 비슷한 시기에 맡았던 두 사건의 어르신들이 생각나서 이번 칼럼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재판상 이혼청구권은 부부 고유의 일신전속권입니다. 당사자들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혼소송 중 부부의 일방이 숨지면 더는 진행되지 않고, 재판부는 ‘소송종료 선언’을 한 뒤 종료하게 됩니다. 소송 당사자가 사망하면 일단 소송절차가 중단되고, 이후 사망한 당사자의 상속인들이 소송절차를 수계해 계속 진행하는 일반소송과 차이가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233조 제1항).
황혼이혼 소송을 진행하면서 작년에 처음으로 의뢰인의 빈소를 찾게 되었습니다. 평소 부친의 눈 밖에 났던 몇몇 자녀가 모친을 부추겨 과거 실제 있지도 않았던 부친의 유책행위를 허위로 주장케 하는 등 사실상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 부친을 공격하던 중 어르신이 갑작스럽게 숨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어르신은 90세가 훨씬 넘었는데, 상대방 배우자가 계속해서 고의로 이혼 소장을 송달받지 않는 탓에 결국 공시송달로 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상대방 역시 망구(望九)의 어르신인바, 집행관의 특별송달(집배원이 야간과 휴일에 배달을 실시)을 피하자는 전략을 스스로 생각해냈을 리는 만무해 보입니다. 이 역시 상대방 배우자의 뒤에는 아버지의 재산분할 청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자녀가 있습니다. 당사자들이 워낙 고령이다 보니 소송을 장기화하겠다는 전략인 것입니다.
모든 사건이 그러해야 하지만, 특히 두 어르신을 생각하면 황혼이혼 사건의 신속한 진행과 공정한 판결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우수(雨水)답게 막바지 꽃샘추위가 기승입니다. 당사자 어느 쪽을 대리하든 얼른 추운 날씨가 누그러지고 따뜻한 봄이 되어 당사자 모두 건강하게, 공명정대한 판결을 받게 되길 바랍니다.
◉ 유의할 점
‧ 이혼소송 중 일방 당사자가 사망하는 경우, 상대방 배우자는 여전히 상속인의 지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법이 규정한 상속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사망한 배우자의 재산을 그대로 상속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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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jin.lee@baru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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