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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디아노’ 커피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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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3-02 14:17:09 수정 : 2025-03-02 14: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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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죽아’라는 표현이 있다. 한겨울에 얼어 죽을 만큼 추워도 꼭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겠다는 뜻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줄인 ‘아아’라는 말도 널리 쓰인다. 커피의 여러 종류 가운데 한국인들이 단연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바로 아메리카노라는 점을 보여준다.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희석해 만든 아메리카노는 이름과는 달리 이탈리아에서 처음 탄생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진주한 미군 장병들이 에스프레소에 물을 섞어 마시는 모습을 본 이탈리아인들이 ‘미국식 커피’라는 뜻에서 아메리카노로 명명했다는 것이다. 이후 1980년대에 미국 기업 스타벅스가 이를 주력 메뉴로 채택하며 처음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른바 ‘미국 취향의 커피’로 알려지며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로 널리 퍼져나갔다.

최근 캐나다의 카페에 아메리카노 대신 등장한 ‘캐나디아노’ 커피(왼쪽 사진). 오른쪽은 빨간색 단풍잎이 그려진 캐나다 국기와 미국 성조기가 나란히 나부끼는 모습. 게티이미지 제공

2022년 4월 88세를 일기로 타계한 한승헌 전 감사원장은 아메리카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를 남겼다. 그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인권 변호사로서 군사 정권의 인권 탄압에 맞서 싸우고 재야 인사로서 민주화 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그렇다 보니 한 전 원장 주변 사람들은 그가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던 모양이다. 하루는 한 전 원장이 지인에게 자신은 반미(反美)주의자가 아니라고 강조하며 “커피는 아메리카노를 마십니다”라고 점잖게 말했다. 과거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진보 진영 인사를 향해 “위선자”라는 비난이 쏟아진 점을 의식한 농담으로 풀이됐다. 한 전 원장의 말을 들은 이들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고 한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이은 러시아의 ‘2인자’로 통한다. 그가 푸틴 밑에서 총리로 재직하던 2016년 11월 러시아·미국 관계는 극도로 악화했다. 2년 전인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이던 크름(크림)반도를 강제로 탈취한 뒤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 제재에 직면했으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도 퇴출됐다. 그러자 메드베데프는 러시아의 식당과 카페에서 판매하는 아메리카노를 겨냥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름이 아니다”며 “다른 이름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이후 해당 커피 메뉴를 아메리카노 대신 ‘러시아노’로 표기한 음식점이 생겨났다. 권력자의 한마디 말이 나라를 뒤흔드는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최근 캐나다의 카페 메뉴판에 ‘캐나디아노’ 커피(빨간 원)가 적혀 있는 모습. 미국을 떠올리게 만드는 아메리카노 커피에 대한 반감이 담겨 있다. SNS 캡처

미국 도널드 트럼프2기 행정부 출범 후 미국·캐나다 관계가 심상치 않다. 트럼프는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州)’라고 폄훼하는가 하면 캐나다산 상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캐나다에서 반미 감정이 들끓기 시작했다. 캐나다와 미국 대표팀 간의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난 것이 대표적이다. 애국심에 고취된 캐나다인들의 구매 폭증으로 빨간색 단풍잎이 그려진 캐나다 국기가 요즘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급기야 수도 오타와의 한 카페에 아메리카노 대신 ‘캐나디아노’(Canadiano)라는 커피 메뉴까지 등장했다. 미국이 아무리 초강대국이라고 해도 세계 나머지 나라 전부를 적으로 돌리고 혼자서만 번영할 순 없다는 점을 트럼프가 언제쯤 깨달을지 답답할 뿐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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