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년 와인 역사 시칠리아를 가다/다양한 토착품종·떼루아 고스란히 담는 와인 만들어/필록세라 없어 100년 수령 네렐로 마스칼레제 즐비/이탈리아 대표 주정강화와인 마르살라·건조한 지비보로 만드는 스위트 와인도 탁월

피노누아 품종으로 빚는 프랑스 부르고뉴 마을단위 와인 샹몰 뮈지니의 우아함. 네비올로 품종으로 빚는 이탈리아 ‘와인의 왕’ 피에몬테 바롤로의 강건함. 여기에 화산재 토양이 선사하는 미네랄 한 방울까지. 이 모든 걸 갖춘 포도 품종이 있습니다. 척박한 화산 토양에서 뿌리를 깊게 내리고 백년 넘게 살아가는 고대 품종 네렐로 마스칼레제. 이 신비한 와인을 찾아 지중해 최대의 섬,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날아갑니다.

◆6000년 역사 자랑하는 시칠리아 와인
공식적으로 시칠리아 와인 역사는 3000년 정도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보다 훨씬 오래된 6000년으로 추정됩니다. 시칠리아 원주민 부족인 시카니(Sicani), 시쿨리(Siculi), 엘리미안(Elymians)이 시칠리아에 1만2000년정도 살았고 이들이 6000년전부터 와인을 빚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기원전 1100년∼1000년 페니키아인들이 서부 시칠리아 마르살라에 정착하면서 시칠리아 와인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페니키아인들은 과숙한 포도로 만든 달콤한 와인을 지중해 전역에 유통시켰는데 나중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시칠리아 주정강화 마르살라(Marsala) 와인으로 발전합니다. 기원전 800∼700년 그리스인들은 포도 재배와 양조 기술을 시칠리아 동부로 전파합니다.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호메로스는 ‘시칠리아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멋진 와인을 만드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라며 시칠리아의 떼루아를 극찬합니다. 그리스인들은 포도를 재배하기에 너무 멋진 곳이라며 시칠리아를 ‘포도나무의 땅’이란 뜻의 ‘오이노트리아(Oenotria)’라고 불렀을 정도랍니다.


기원전 700~241년 시칠리아 와인은 그리스 전역에서 유명해졌고 기원전 241~기원후 440년에는 로마가 시칠리아를 점령하면서 와인산업이 크게 발전합니다. 로마는 시칠리아의 비옥한 땅을 이용해 로마 병사들에게 먹일 밀과 와인을 재배했고 이는 로마 제국 전역으로 퍼져갑니다. 이처럼 와인 역사가 오래됐지만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시칠리아 와인은 대형 협동조합에 만드는 낮은 품질 와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980년대 들어 디에고 플라네타(Diego Planeta), 자코모 타키스(Giacomo Tachis), 마르코 데 바르톨리(Marco De Bartoli)등 유명한 양조학자들이 등장하면서 포도나무 한그루당 수확량을 대폭 낮춰 획기적으로 품질을 끌어 올리게 됩니다.

◆시칠리아 기후와 포도 품종
시칠리아 포도밭 면적은 9만8000ha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와인 생산지입니다. 이중 원산지 통제 규정을 받는 DOC는 23개, DOCG는 1개로 포도밭 면적은 2만4683ha입니다. 현재 생산자 7902명, 와이너리 530개가 회원입니다. 시칠리아 토착품종은 70종이 넘지만 DOC를 받는 토착품종은 14개, 국제품종 13개이며 한 품종이 85%를 넘으면 레이블에 품종 이름을 표기할 수 있습니다.

시칠리아는 매우 더운 곳이지만 놀랍게도 화이트 품종을 더 많이 재배합니다. 대부분의 포도밭이 고도가 높은 산악지대(24%), 언덕(62%)에 있고 나머지 14%는 평지이지만 해안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에트나 화산 주변 포도밭은 해발고도 1000m까지도 올라갑니다. 고도가 높을수록 서늘하고 일교차가 커 산도가 좋은 포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산뜻한 화이트 와인이 많이 만들어집니다.
가장 많이 재배하는 토착 화이트 품종은 주정강화 와인 마르살라를 만드는 카타라토 비앙코(Catarratto Bianco)입니다. 그릴로(Grillo), 인졸리아(Inzolia), 그레카니코(Grecanico), 지비보(Zibibbo)도 많이 재배하는 토착 화이트 품종이고 피노 그리지오, 샤르도네, 트레비아노, 비오니에도 생산됩니다. 토착 레드 품종은 네로 다볼라(Nero d'Avola)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또 에트나 화산에서 네렐로 마스칼레제(Nerello Mascalese), 네렐로 카푸치오(Nerello Cappuccio), 프라파토(Frappato)도 많이 재배되고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산지오베제, 국제품종인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등도 자랍니다.


◆시칠리아 최대 생산자 돈나푸가타
1851년 설립돼 1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돈나푸가타(Donnafugata)는 이탈리아의 프리미엄 와인 생산자 모임 ‘그란디 마르끼(Grandi Marci)’의 멤버. 에트나, 콘테사 엔텔리나(Contessa Entellina), 마르살라(Marsala), 판텔레리아(Pantelleria), 비토리아(Vittoria) 등 시칠리아 전역에 포도밭을 보유한 시칠리아 최대 와인생산자입니다. 다양한 토착 품종과 국제품종으로 가성비 뛰어난 와인을 생산해 한국 소비자에게도 인기가 높죠. 특히 예술작품 같은 감각적인 레이블이 돋보여 와인을 수집하게 만듭니다.


소금으로 유명한 트라파니의 마르살라에 있는 본사로 들어서자 홍보담당 라우라 베르토니(Laura Bertoni)와 마리아나 라우디치나(Marianna Laudicina)가 비가 주룩주룩 쏟아 붓는 궂은 날에도 쾌활한 표정으로 반깁니다. 돈나푸가타를 대표하는 매력적인 와인중 하나가 이탈리아 최고의 스위트 와인으로 꼽히는 벤 리에(Ben Rye). 마르살라 인근 아름다운 섬 판텔레리아 섬에서 자라는 지비보 품종으로 빚는 이 와인은 포도를 자연 건조하는 ‘파시토(Passito)’ 방식으로 만듭니다. 말린 살구, 무화과, 대추야자 등 자연스럽게 응축된 과일향과 당도가 미각을 화려하게 자극합니다. 벤 리에는 아랍어로 ‘바람의 아들(son of the wind)’이란 뜻. 끊임없이 부는 바람으로 유명한 판텔레리아 섬의 기후를 와인 이름에 잘 담았습니다. 초콜릿, 과일 타르트, 블루치즈, 푸아그라와 잘 어울립니다.

마리아나가 특별한 와인을 내놓습니다. 콘테사 엔텔리나에서 생산되는 돈나푸가타의 시그니처 레드와인 밀레 에 우나 노떼(Mille e una Notte)인데 넷플릭스 로고가 레이블에 크게 적혀 있습니다. 돈나푸가타는 넷플릭스 뿐 아니라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와 콜라보해 레이블을 디자인한 다양한 와인도 선보입니다. 밀레 에 우나 노떼는 네로 다볼라를 메인으로 쁘띠 베르도와 시라를 블렌딩했으며 레드체리, 블랙베리, 블랙멀버리 등 풍성한 과일향으로 시작해 감초 등 허브향이 더해지며 매끄러운 탄닌이 돋보입니다.

밀레 에 우나 노떼는 ‘천 하루의 밤’을 뜻하며 시칠리아로 피난 온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의 궁전과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영감을 받은 반짝이는 별이 그려져 있습니다. 실제 돈나푸가타는 ‘피난처의 여인’이란 뜻으로 실존인물입니다. 19세기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의 아들로 나폴리·시칠리아를 다스리던 페르디난도(Ferdinando) 4세의 아내 마리아 카롤리나(Maria Carolina· 1752∼1814)를 말합니다. 카롤리나는 오스트리아 위대한 국모인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의 13번째 딸로 바로 유명한 프랑스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의 언니.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때 국고를 낭비한 죄와 반혁명을 시도한 죄명으로 처형된 비운의 여인입니다. 이 때문에 언니 마리아 카롤리나는 프랑스에 반감을 품고 프랑스에 대항하는 세력과 동맹을 맺게 됩니다. 정치적인 야심이 강해 왕을 대신해 권력을 휘두르던 그녀는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만 전선에 투입된 인물은 바로 나폴레옹. 결국 카롤리나와 남편 페르디난도 등 국왕 일가는 시칠리아로 쫓겨나듯 도망갑니다. 그녀가 시칠리아에 머물던 건물이 바로 현재의 돈나푸가타 와이너리의 건물이 된 콘테사 엔텔리나의 건물입니다. 그녀는 나중에 남편에게 미움 받고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추방된 뒤 63세의 일기로 사망한 기구한 여인이기도 합니다.


돈나푸가타는 이탈리아의 국민 작가 쥬세페 토마시의 소설이자 1963년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레오파드’, 루도비코 아리오스토의 서사시 등 이탈리아와 유럽의 전설이나 문학작품에서 와인의 이름을 빌려오고 있습니다. 와이너리 탄생부터 예술과 낭만주의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 실제 와이너리의 공동 경영자인 조세 랄로 본인 역시 재즈 가수로서 뉴욕의 블루 노트에서 공연했으며 현재까지도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돈나푸가타 와인은 나라셀라에서 수입합니다.
◆마르살라 터줏대감 펠레그리노


마르살라는 사실 달콤한 주정강화 와인으로 유명한 곳으로 지명이지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주정강화 와인을 뜻하는 대명사로 쓰입니다. 마르살라의 터줏대감은 1880년부터 역사가 시작된 펠레그리노(Pellegrino). 홍보담당 안나 루니(Anna Ruini)를 따라 셀러로 들어서자 천정까지 차곡차곡 쌓은 대형 오크통이 눈길을 사로잡네요. 솔레라 방식으로 양조하는데 지붕의 태양열을 이용해 와인을 숙성시킵니다. 맨 아래 오크에서 오래 숙성된 와인을 빼내고 새로 만든 와인을 맨 꼭대기 오크통에 부으면서 숙성합니다. 마르살라는 그릴로(Grillo), 카타라토 비앙코(Catarratto Bianco), 인졸리아(Inzolia) 등 다양한 토착품종으로 만듭니다.


대표 와인은 올드 존(Old John) 수페리오레 리제르바. 안나와 함께 마르살라 맛집 아수드 아 산 프란체스코(Assud a San Francesco)의 인기 높은 디저트 바시오 판테스코(Bacio Pantesco)에 올드 존 한잔 곁들이자 여행의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집니다. 판텔레리아 섬에서 유래한 전통 디저트 바시오 판테스코는 ‘판텔레리아의 키스’라는 뜻. 사랑하는 이와 나누는 달콤한 입맞춤을 그대로 닮았네요.

펠레그리노 네스 파시토 나투랄레(Nes Passito Naturale)는 판텔레리아 섬에서 자라는 지비보를 파시토 방식으로 건조해 만드는 스위트 와인입니다. 살구 등 마른 과일과 지중해 허브의 강렬한 아로마, 밤꿀과 감귤류의 은은한향이 매혹적으로 어우러지면 긴 여운을 남깁니다. 리코타 치즈, 초콜릿 디저트, 허브향이 나는 스파이시한 치즈와 완벽한 궁합을 보입니다. 펠레그리노 와인은 하이트진로가 수입합니다.


◆마르살라 와인
포도 발효과정에서 당도가 남았을 때 포도로 만든 알코올 도수 70% 이상의 주정을 부우면 효모 활동이 중단되면서 달콤하고 알코올도수가 높은 18% 안팎이 주정강화와인이 완성됩니다.마르살라는 1773년 영국의 무역가 존 우드 하우스가 스타일을 완성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답니다. 닐슨 제독의 함대가 마르살라 와인을 싣기 위해 시칠리아에 정기적으로 정박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탈리아 통일을 이끈 쥬세페 가리발디가 세미드라이 스타일의 마르살라를 좋아해 세미드라이 마르살라에 ‘가리발디 돌체’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19세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주정강화와인으로 1932년 이탈리아 최초의 생산지통제규정(DOC) 와인으로 선정된 곳이 마르살라입니다. 지정된 마르살라 DOC 구역안에서 생산, 숙성, 병입이 이뤄져야 하고 시칠리아 토착 포도품종만 사용해야 합니다. 컬러에 따라 앰버, 골드 루비노로 나뉩니다. 또 1년 숙성은 파인(최소 17%), 2년 숙성은 수페리오레(최소 18%), 4년 숙성은 수페리오레 리제르바, 5년 숙성은 베르지네(Vergine), 10년 숙성은 베르지네 리제르바로 부릅니다다. 잔당 기준으로 드라이(리터당 40g), 세미드라이(40~100g), 스위트(100g 이상)로 구분합니다.

◆화산토양에 자라는 네렐로 마스칼레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해발고도 3329m 에트나 화산은 지난해 7월에도 용암이 분출됐을 만큼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활화산입니다. 이에 포도밭은 늘 화산재로 덮여 있을 정도입니다. 화산재 토양은 배수가 잘되고 매우 건조해 포도나무가 필록세라 등 병충해에 매우 잘 견딥니다. 미국산 포도나무 뿌리를 접목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100년 넘은 올드바인이 무럭무럭 자라는 이유입니다. 화산토에서 자란 포도는 미네랄이 아주 풍부해 시칠리아만의 고유의 향과 맛이 담긴 와인이 빚어집니다. 포도밭은 에트나 기슭 가파른 경사에 계단식으로 조성됐고 강한 바람 때문에 키가 낮은 덩굴 형태의 부시바인으로 재배하는데 이는 시칠리아 전통 재배방식으로, 알베렐로(Alberello)라 부릅니다.

시칠리아는 한여름 낮기온이 섭씨 45도를 훌쩍 넘길 정도로 굉장히 더운 지역이지만 유일하게 에트나 북쪽에만 2월까지도 눈에 덮일 정도로 선선한 기후를 보입니다. 해발고도가 높아 낮에는 뜨겁지만 저녁에는 시원해 큰 일교차를 보입니다. 덕분에 낮에는 당도가 쭉쭉 올라가고 밤에는 포도가 충분히 쉬면서 뛰어난 산도를 얻게 됩니다. 강한 바다 바람때문에 포도가 짠맛도 품게 됩니다. 이런 에트나에서도 대륙성 기후로 건조한 북쪽 밸리에 최상급 포도밭들이 몰려 있습니다. 조금만 떨어진 포도밭도 서로 기후가 달라지는 미세 기후여서 포도밭은 다양한 특성을 지닙니다.

에티나는 이탈리아 DOC 치고는 매우 작아 포도재배 면적은 750㏊입니다. 피에몬테 바롤로 보다 적은 규모로 생산자는 130명정도 입니다. 피에몬테 바르바레스코와 면적은 비슷한데 생산량이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에트나에는 독특한 토착 포도 품종이 자라는데 바로 고대 품종 네렐로 마스칼레제(Nerello Mascalese). 부르고뉴와 피에몬테와 거의 비슷한 기후를 지녀 네렐로 마스칼레제는 레드체리의 과일향과 장미꽃향을 지닌 우아한 피노누아와 골격이 단단하고 힘이 넘치는 바롤로의 강인한 캐릭터를 모두 지니게 됩니다. 여기에 화산 토양 덕분에 가벼운 스모키향과 씁슬한 미네랄이 부여되면서 에트나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네렐로 마스칼레제가 탄생합니다.

◆전통방식 스파클링 와인 장인 테라쩨 델 에트나
에트나 북쪽 역사적인 중세 마을 란다조(Randazzo) 동쪽 산기슭에 최고의 포도밭과 뛰어난 생산자들이 옹기종기 몰려 있는데 테라쩨 델 에트나(Terrazze dell'Etna)는 샴페인과 같은 방식으로 2차 병발효와 숙성을 거쳐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와이너리로 들어서자 잘 생긴 와인메이커 로베르토 무치푸오리(Roberto Muccifuori)가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합니다. 에트나 화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해발고도 600~950m에 알베렐로 방식으로 만든 포도밭 36ha에는 수령 70년 이상의 네렐로 마스칼라제가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에트나에 큰 애정을 지녔던 팔레르모 출신의 엔지니어인 니노 베빌리쿠아(Nino Bevilacqua)는 작고 버려진 포도밭을 매입해 2008년 와이너리를 설립합니다. 와이너리 이름 테라쩨는 에트나 고대 포도재배 방식인 테라스 형태 포도밭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에트나 지역의 떼루아를 최대로 잘 표현해 내기 위해 ‘와인 마법사’로 불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컨설턴트이자 와인메이커인 리카르도 코타렐라(Riccardo Cotarella)가 참여했습니다. 무치푸오리 역시 그에게서 와인메이킹 기법을 전수받았습니다.


피노누아와 네렐로 마스칼레제를 섞은 로제 브뤼와 샤로도네로 만드는 뀌베 브뤼 등 두 종류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데 무려 3년동안 병숙성을 합니다. 생산량은 불과 각 2만5000병이니 얼마나 품질에 집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로제는 화산토양에 얻은 부싯돌 느낌의 미네랄과 샴페인 뺨치는 빵껍질 같은 깊은 효모향이 석류, 야생 산딸기의 과일향과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엄지가 저절로 올라갑니다. 테라쩨 델에트나 치르네코(Cirneco) 에트나 로쏘는 네렐로 마스칼레제 100%, 카루수(Carusu)네렐로 마스칼레제 80%, 네렐로 카푸치오 20%입니다. 군더더기 없이 포도품종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잘 보여줍니다.
에트나 주변에는 마땅한 호텔을 찾기 쉽지 않은데 걱정하지 마세요. 테라쩨 델 에트나에는 창밖으로 포도밭 풍경을 즐기는 아주 예쁜 숙소 있어 하룻밤 묶어가기 좋답니다. 가격도 1박에 100유로 안팎으로 아주 착한 편입니다. 테라쩨 델 에트나 와인은 이탈리아 와인 최대 유통기업 에티카와인스(Ethcawines)를 통해 제이와인이 수입합니다.


◆‘달콤한 화산 돌’ 피에트라돌체
피에트라돌체(Pietradolce)는 에트나 화산에서 만드는 와인의 정체성을 이름에서 잘 보여줍니다. 와이너리 이름은 ‘달콤한 돌’이란 뜻. 암석과 화산토양으로 이뤄진 땅에서 생산되는 맛있는 와인이란 의미를 이름에 잘 담았네요. 와인 레이블에도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머리에서 용암이 분출하는 이미지를 담아 부드러우면서 강렬한 와인 이미지를 표현합니다. 실제 시칠리아 사람들은 에트나 화산을 삶의 일부이자 신성한 존재로 여겨 ‘마마 에트나’로 부르는데 이런 정서를 와인에서도 보여 줍니다.


소믈리에 발레리아(Valleria)를 따라 포도밭으로 들어서자 용암이 흘러내린 흔적이 역력한 라바 플로우(lava flow)의 거대한 바위 틈 사이로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작은 포도밭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 90~130년 수령 포도나무가 자란다는 것이 신기하네요. 발레리아는 “화산토양에는 포도나무 뿌리를 병들게 하는 필록세라가 살지 못하기 때문에 오랜 수령 포도로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와이너리는 에트나 떼루아를 온전히 표현하려고 레드는 네렐로 마스칼레제, 화이트는 카리칸테 등 토착 품종으로만 와인을 만듭니다. 바르바갈리 에트나 로쏘(Barbagalli Etna Rosso)가 대표 와인으로 레드체리의 과일향과 미네랄이 돋보입니다. 피에트라돌체는 에노테카 코리아에서 수입합니다.


◆네렐로 마스칼레제 장인 파소피시아로
파소피시아로(Passopisciaro)는 ‘네렐로 마스칼레제 와인의 장인’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합니다. 와이너리 설립 7년 만인 1999년 로버트 파커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이탈리아 토스카나 와인의 전설 안드레아 프란케티(Andrea Franchetti)가 2000년부터 에트나에서 만들기 시작한 와인입니다. 마케팅 담당 제시카 디 빈첸조(Gessica di Vincenzo)를 따라 포도밭 구경에 나섭니다. 에트나의 아주 가파른 경사에 있는 작은 포도밭마다 다 이름이 적혀있는데 고품질 포도가 생산되는 싱글빈야드로 시칠리아에선 콘트라다(Contrada)로 부릅니다. 콘트라다 포도는 밭을 섞지 않고 만드는데 파소피시아로는 람판테(Rampante), 끼아페마치네(Chiappemacine), 포르카리아(Porcaria), 과르디올라(Guardiola), 시아라누오바(Sciaranuova) 등 5개 콘트라다의 첫글자를 딴 와인을 선보입니다.


콘트라다가 아닌 기본급 파소로쏘(Passorosso)만 마셔봐도 수준이 금세 파악됩니다. 떼루아를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필터링을 안했으며 붉은 과일과 샌달우드의 향신료가 어우러지는 복합미가 뛰어납니다. 부르고뉴 피노누아의 우아함과 피에몬테 바롤로의 강건함을 버무린 듯한 매력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파소피시아로의 플래그십은 안드레 프란케티의 이름을 딴 프란케티(Franchett). 쁘띠 베르도70%, 체사네세 다필레(Cesanese d'Affile) 30%를 블렌딩합니다. 프랑스 보르도 생줄리앙에서 가져온 쁘띠 베르도와 이탈리아 중부 라지오에서 가져온 체사네세 다필레로 만듭니다. 파소피시아로는 금양인터내셔널에서 수입합니다.

◆네로 다볼라 장인 쿠수마노
쿠수마노(Cusumno)는 에트나에서 알타모라(Alta Mora)를 생산합니다. 화이트 품종 카리칸테로 빚는 알타모라 에트나 비앙코가 돋보입니다. 청사과, 서양배, 라임의 순수한 과일 캐릭터가 화산토양에서 얻는 스모키한 아로마, 짭조름한 미네랄과 환상적으로 어우러집니다. 알타모라 에트나 로쏘는 네렐로 마스칼레제 100%로 라즈베리와 검은체리로 시작해 육두구, 민트 아로마가 더해지고 부싯돌의 미네랄이 잘 느껴집니다.

쿠수마노는 팔레르모 인근에 와이너리 본사가 있습니다. 생산시설로 들어서자 하루에 3000병을 생산하는 자동화설비에서 코르크로 마감하는 공정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들리네요. 마케팅 담당 마리아 비나(Mayra Bina)와 포도재배와 양조를 총괄하는 오놀로지스트 스테파노 마시아렐리(Stefano Masciarelli)는 “쿠수마노의 진정한 매력은 네로 다볼라 품종에서 나온다”고 역설합니다. 네로 다볼라는 블랙체리 등 아주 잘 익은 검은 과일 향이 지배적이고 장미, 후추향 등 스파이시한 노트와 감초 등 달콤한 향신료가 도드라지는 품종입니다. 탄닌은 아주 부드러워 호주 쉬라즈와 많이 비교됩니다. 장기 숙성력도 뛰어나 요즘 시칠리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시칠리아 전역에서 잘 자라는데 고도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생산됩니다. 더운 남부 지역에서는 코코아와 말린 과일의 특징이 느껴지는 풀바디 와인으로 생산되고 산악 지대에서 자란 네로 다볼라는 우아한 와인으로 빚어집니다.

쿠수마노 사가나(Sagana)는 네로 다볼라 100% 와인으로 잘 만든 네로 다볼라 와인의 전형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눈 감고 마시면 부르고뉴의 마을단위 피노누아 같이도 하고 보르도 우안 생테밀리옹 그랑크뤼처럼 느껴질 정도로 우아한 향수향이 폭발합니다. 블랙체리, 블랙베리의 진한 과실 향으로 시작해 은은한 장미꽃향이 더해지고 미네랄과 향신료가 듬뿍 담긴 화려하고 복합미가 넘치는 향들이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부드럽게 목젖을 타고 흐르는 탄닌의 질감도 매력적입니다. 사가나는 ’매우 소중한’, ‘보물’이라는 뜻인데 정말 보물 같은 와인입니다.

쿠수마노 노아(Noa)는 네로 다볼라 40%, 메를로 30%, 카베르네 소비뇽 30%를 섞은 와인으로 시칠리아 토착품종과 국제품종의 절묘한 결합을 잘 보여줍니다. 볼게리 수퍼 투스칸을 닮은 ‘수퍼 시칠리아’ 와인으로 블랙베리, 블랙 커런트로 시작돼 온도가 오르면 밀크 초콜릿, 오렌지 껍질향, 감초 등 향신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집니다.

2001년 알베르토 쿠수마노(Alberto Cusumano)와 디에고 쿠수마노(Diego Cusumano) 형제가 만든 쿠수마노 와이너리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5개 싱글빈야드 포도밭 500ha에서 와인을 생산합니다. 오로지 자가 소유 포도밭에서만 와인을 만듭니다.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꼬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에서 2021년 올해 최고의 와인메이커로 선정됐고 미국에서는 시칠리아 브랜드 중 1위를 달립니다. 시칠리아 와인 양조의 모던화를 이끈 혁명적인 와이너리로 평가 받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최고 권위 와인 매체인 감베로 로쏘(Gambero Rosso)의 최고 평점인 트레 비끼에리(Tre Bicchieri)도 여러차례 수상했습니다. 쿠수마노 와인은 이탈리아 와인 최대 유통그룹 에티카 와인스(Ethica Wines)를 통해 트렌드인터내셔날이 수입하며, 알타모라는 비노비노에서 수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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