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 방안 관심, 사실상 저조
복잡한 통계·과학적 용어 난해
시민 눈높이 맞게 재설계 필요
오는 4월이면 녹색전환연구소에 입사한 지 3개월 차에 접어든다. 이전보다 크게 달라진 점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는 방식이 훨씬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기자 시절에는 명함만 내밀어도 다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단번에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먼저 녹색전환연구소가 민간 기후 싱크탱크라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국내외 기후정책을 연구해 정책 대안을 만들고 있다는 내용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맡은 프로젝트들도 덧붙인다. 이 순서대로 가족들에게 설명했음에도,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묻는다. “그래서, 무슨 일하는 곳이야?”

이제 나는 이 일을 공연에 비유한다. 기후대응이란 거대한 스토리에 맞춰 각본(정책)을 짜고, 무대장치(프로젝트) 같은 세세한 내용을 설계하고 실행한다고 말이다. 공연 주제 자체가 비주류인 탓에 관객(시민)들을 데려오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도 뛰어야 한다. 지향하는 바가 달라서 서로 싸우는 배우(이해관계자)들을 어르고 달래야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가족들을 포함한 주변 지인들은 내가 단순히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동생은 나를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가족 속 캐릭터인 리사 심슨에 비유한다. 환경 파괴를 걱정하며, 언젠가 태양광만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하는 캐릭터 말이다. 그 뒤에는 늘 이 말이 따라붙는다. “리사처럼 언제나 알아먹기 어려운 이야기나 늘어놓는 사람”.
물론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기후정치바람이 2023년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이 직면한 사회적 도전과제를 물은 결과, 당시 응답자의 71.2%는 폭염·가뭄 등 기후위기를 꼽았다. 이는 인구소멸(79.9%) 다음으로 가장 높은 것이었다. 다른 기관이 수행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된 바 있다.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영향이 크며, 이 문제가 앞으로 계속 악화할 것이란 점에 높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난다.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과 해결 방안에 대한 관심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51.8%는 기후총회(COP)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지난 대선에서 언급돼 화제를 모았던 RE100 역시 응답자의 54.6%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는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인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역시 응답자 58.9%는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조사 결과는 단순 명료하다. 기후대응을 둘러싼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기후위기는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복잡한 통계가 넘쳐날뿐더러, 이를 전달하는 언어는 의학용어 수준으로 난해하다. 기후문제가 경제·산업·사회·문화 등 모든 이슈와 연결돼 있다는 점도 단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정치적 혼란이나 경제불황 같은 다른 문제가 떠오를수록 기후대응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향도 있다. 기후이슈가 시민들의 일상과 연결되지 못한 채 계속 멀어지는 것이다. 기후위기란 복잡한 이야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확실함과 공포도 깔려 있다.
이제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하는 시점이다. 기후대응이란 거대한 무대에 더 많은 이가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과학의 언어를 시민의 언어로 재설계해야 한다. 다양한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섬세한 메시지 역시 필요하다.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로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다. 이해당사자 모두가 함께할 공론장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더 나은 방향을 찾아야 한다.
흩어진 메시지를 모아 큰 그림을 제시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정의로운 전환과 기후대응을 모두 실현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담은 로드맵 없이는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악몽을 향해 달려간다고 느끼는 요즘, 존경하는 한 변호사님의 말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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