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위험한 생각/ 대니얼 C 데닛/ 신광복 옮김/ 바다출판사/ 6만5000원
“무엇이든 녹여버리는 ‘만능 산’(universal acid).”
지난해 82세 나이로 작고한 미국의 생명철학자 대니얼 C 데닛 전 터프츠대 교수는 ‘다윈의 위험한 생각’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초강력 산성 물질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는 진화론이 생명과 우주, 문화와 마음을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을 180도 전복하는 혁명을 이룩했다고 봤다. “다윈의 아이디어는 모든 전통적인 개념을 부식시킬 뿐 아니라, 그 먹어치운 자리에 혁명을 겪은 새로운 세계관을 남겨 놓는다.”(120쪽)

그에 따르면 다윈의 ‘위험한 생각’이 미친 파급력은 생물학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근대 이전까지 인류가 창조론을 기틀로 세웠던 전통적 사고체계에 다윈의 아이디어가 파고들며 조금씩 균열이 만들어졌고, 우주론·심리학·윤리학·정치·종교에 이르기까지 인간 문화의 전 영역에서 혁명적 세계관 변화가 이뤄졌다.
데닛은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크게 두 가지로 축약했다. 종이 분화되는 과정이 알고리즘이라는 발상과 자연선택 과정이 무목적적이고 점진적이라는 발상이다. 즉 진화란 목적도 마음도 없는 알고리즘 과정일 뿐이며, 그 알고리즘에 따라 충분한 시간과 수많은 우연적 사건이 겹치고 쌓여 지금과 같은 복잡하고 정교하며 다양한 생명 세계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진화 알고리즘을 통해 우리가 등장했지만, 이것이 우리를 위한 알고리즘은 아니다. 인간은 하나의 기원에서 수많은 가지가 뻗어나가는 ‘생명의 나무’ 안 하나의 가지 끝에 해당하는 존재일 뿐, 생물종 중 높은 서열을 차지하는 존재가 아니다. 데닛이 보기에 전지전능한 신마저도 인간 문화가 만들어낸 피조물이며 진화의 산물이다.
책은 1995년 미국에서 출간돼 데닛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방대한 분량과 문학·철학·과학·예술을 넘나드는 저자의 박학한 사유 때문 30년이 돼서야 국내에 소개됐다. 번역에만 5년, 편집 과정도 2년이 걸렸다고 한다. 950쪽이 넘는 ‘벽돌책’이지만 독파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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