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끌어내니까 오히려 조용해진 거야. 이전엔 완전 전쟁터였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이틀 앞둔 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만난 한 인근 주민은 이날 헌재 주변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헌재는 수백미터에 걸쳐 둘러진 경찰 버스 ‘차벽’으로 요새화된 모습이었다. 헌재로 향하는 길목마다 차단벽과 펜스가 세워졌고 이곳을 지나기 위해선 경찰의 신원 확인을 거쳐야 했다. 일부는 경찰에게 가방 내부까지 보이는 검문을 받기도 했다.

경찰의 이런 ‘진공 상태’ 경비에 주변 큰길인 율곡로에서 헌재로 향할수록 사람의 왕래는 줄었다. 이중삼중의 경계 태세를 갖춘 정문 앞에는 고요함마저 감돌았다. 200∼300m 밖 집회에서 사용하는 확성기와 음악 소리만 멀리서 들리는 정도였다. 연일 계속되던 헌재 앞 유튜브 방송이나 기자회견은 전날부터 대부분 중지됐고 이날까지 일부 남은 ‘단식 투쟁’ 참가자들도 별다른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날부턴 주변 교통 통제도 강화했다. 헌재 ‘블록’이라 할 수 있는 안국역사거리부터 재동초사거리까지뿐 아니라 낙원상가까지의 남북방향의 도로가 막혔다. 여기에 더해 율곡터널에서 안국동사거리 동서방향까지 안국역을 중심으로 십(十)자 모양의 도로가 대통령 탄핵심판까지 통제된다.
차량이 다니지 않는 도로에는 탄핵을 촉구하는 이들과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여들었다. 안국역사거리를 중심으로 서쪽엔 전날부터 철야농성을 벌이던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등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집회가, 맞은편 창덕궁 삼거리 쪽에선 ‘탄핵심판 기각·각하’를 외치는 집회가 열렸다. 두 집회 사이 경찰 차단선이 겹겹이 있어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헌재 인근 상가들도 탄핵심판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특히 경비 강화로 통행이 제한된 헌재 앞 북촌로의 상점이 큰 타격을 받았다. 이날 아예 영업하지 않는 기념품 가게나 카페도 여럿 있었다. 영업 중이던 헌재 인근 기념품 가게의 한 종업원은 “우리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지 않느냐”며 “(손님은 줄어도) 영업은 계속 해왔지만 금요일엔 위험할 거 같아서 하루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인근 학교와 회사도 탄핵심판 선고기일에 대한 대비책을 찾고 있다. 재동초를 비롯해 인근 11개교, 경복궁역 인근 배화여중·고, 경기상업고는 안전사고 등을 우려해 4일 임시 휴업하기로 했다. 안국역 옆에 본사 사옥이 있는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은 당일 전원 재택근무를 한다. 충돌 상황에 대비해 헌재 인근 주유소나 공사장 등 위험물을 취급하는 업장도 운영을 자제한다는 방침이다.
4일 휴교에 들어가는 한 초등학교 관계자는 “헌재 앞에서 시위를 못 하게 되니까 학교 앞까지 와서 시위를 벌이는 경우가 있다”며 “소음 문제가 있고 아이들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헌재 일대에서 벌어지는 시위와 집회, 도로를 둘러싼 ‘차벽’은 이곳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생경한 구경거리였다.
히잡을 쓴 한 외국인 여성은 탄핵 관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음악을 크게 틀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한참 영상으로 담아갔다. 경찰 기동대원들이 버스 옆에 모여 보호복을 착용하는 모습도 외국인 관광객의 시선을 끌었다.
도로를 막은 차벽에 길 을 못찾아 관광객들이 헤매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이 휴대전화 지도 앱만을 보고 목적지로 향하다 경찰에게 가로막혀 가는 길을 되묻는 일이 심심찮게 목격됐다. 교통이 통제된 도로 위 버스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키미씨는 “유명 카페를 가려고 하는데 경찰 버스가 많아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국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온 A씨는 “한국 대통령과 관련한 일이 있다는 것은 안다”며 “경찰이 이렇게 많이 있을 줄은 몰랐다. 며칠 전 유명 관광지를 미리 다녀와서 다행”이라고 했다.
경찰은 선고 당일까지 헌재 주변을 차벽으로 둘러싸고 ‘진공 상태’로 유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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