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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의이매진] 책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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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03 23:00:49 수정 : 2025-04-03 23: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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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주일 심한 감기를 앓았다. 2, 3일 지켜보다 빨리 병원에 가야 했는데 시기를 놓쳐버렸다. 아침 일찍 갔는데도 내과 진료 대기 인원 70명이다. 난 독감인 줄 알았는데 의사 말로는 목이 좀 부은 거 말고는 별것 없다고 한다.

그런데 내 상태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 ‘질병에 대하여’에서 묘사한 것처럼 “독감의 가벼운 공격에 드러나는 황무지와 사막들, 체온이 약간만 올라가도 나타나는 낭떠러지와 화려한 꽃들로 뒤덮인 풀밭들”을 몇 날 며칠 헤매다가 겨우 살아난 기분이 든다. 이제는 미세먼지가 없는 봄 하늘은 기억나지도 않는다.

무엇이든 기운 차릴 음식이 필요해 아파트 앞에서 텐트 치고 장사하는 야채상으로 나갔다. 음식을 잘하는 편도 아니면서 조금은 광택이 있으면서도 색깔이 묘한 쑥 한 팩과 딸기 한 팩을 샀다. 우리 엄마는 감기에 걸리면 시금치죽을 만들어 먹었고, 기침이 심하면 배를 갈아 꿀에 잰 뒤 따뜻하게 쪄서 먹곤 했다. 슬슬 요리를 해보려고 쑥 한 팩을 식탁 위에 쏟아놓았다. 빨리 다듬어야 하는데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식탁으로 돌아가니 그새 쑥 색깔이 변하고 숨이 죽어버렸다. 쑥은 특히 냉해에 약해 냉장고에 넣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야채상 아저씨의 말이 떠올라 냉장고에 넣지도 못하고 식탁 위에 그대로 둔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해 4월에 벚꽃 여행을 갔고 그것이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이었다. 앞으로 진해를 포함해 전국의 유명 벚꽃 여행지에 해마다 가자고 약속했는데…. 그때 엄마랑 도다리쑥국을 먹었다. 음식을 만들고 뭐할 기운도 없어서 책 한 권을 빼 들고 소파에 앉는다.

제목이 좋은 ‘봄이 오면 녹는’이란 국내 작가 세 명의 단편소설 앤솔러지를 골랐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딸기 한 팩을 다 먹었더니 마음이 좀 진정된다. 어떨 때는 약 처방보다 음식 처방보다 책 처방이 더 위로가 된다. 벌써 4월이다.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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