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소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가장 일반적 형태인 희석식 소주와 상대적으로 고급 이미지를 지닌 증류식 소주다.
희석식 소주는 알코올 도수 95%의 고농도 알코올, 즉 ‘주정’을 매입해 물로 희석하고 감미료 등을 넣어 만든 술이다. 직접 발효하거나 증류하지 않기 때문에 ‘희석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가 잘 아는 초록색 병소주가 여기에 해당한다. 맛과 향이 거의 없는 고순도 알코올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깔끔하고 순수하다는 이미지를 강조해 왔다.

증류식 소주는 쌀이나 보리, 과일 등 농산물을 양조장에서 직접 발효하고 증류해 만든다. 원재료의 풍미를 살리는 만큼 다양한 맛과 향, 지역성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화요, 일품진로, 안동소주, 원소주, 마한오크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주류 시장에서는 증류식 소주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저렴하게 많이 마시는 시대에서 벗어나 원재료의 맛과 향을 음미하는 ‘미식의 소주’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조장에서 직접 만든 고급 증류주 원액에 저렴한 주정을 섞으면 어떤 소주가 되는가? 흥미롭게도 현행법상 ‘증류식 소주’로 분류된다. 주정이 전체의 50% 미만으로만 들어가면 순수한 발효·증류 제품이 아니어도 증류식 소주라는 이름을 쓸 수 있고, 지역 특산주 면허가 있다면 온라인 판매도 가능하다.
이런 제품은 생산 원가가 낮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있다. 직접 증류 방식에 비해 소비자 가격을 낮출 수 있고 시장 접근성도 좋아진다. 그만큼 한계도 존재한다. 주정이 섞이게 되면 원재료 고유의 풍미는 흐려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감미료를 추가하는 경우도 많다. 감미료는 일종의 조미료로 작용하지만, 재료 본연의 향과 깊이를 대체할 수는 없다. 결국 전통주의 정체성과 지역성이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많은 이가 순수한 증류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주정이 상당량 포함된 제품도 많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실망할 수도 있다.
보다 명확한 표기 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본질적인 정보는 ‘주정이 들어갔는가 아닌가’이다. 따라서 ‘무(無)주정’이라는 직관적 표기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주정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순수 증류식 소주에는 ‘무(無)주정’이란 문구를 표시함으로써 소비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정을 사용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비자는 이를 알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잘못하면 소비자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주류 시장은 단순히 맛있는 술을 넘어 ‘정확한 표기의 술’이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전통주의 정체성과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주정’ 표기와 같은 구분제도가 필요한 시대다. 이제는 술을 고를 때 맛뿐 아니라 그 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정확히 함께 따져볼 수 있어야 한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넷플릭스 백스피릿의 통합자문역할도 맡았으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에는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