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동 없는 평온한 마무리 다행
올바른 각자의 결정문 만들어
조기 대선일에 의지 표출 기대
12·3 비상계엄 사태가 대통령 파면으로 큰 언덕을 넘었다.
황당했지만 또 너무 불안했던 그 밤을 넉 달 동안 매일 분과 초 되새기면서도 단 한 번 다른 결론을 예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협작과 소망이 뒤엉킨 추정과 추측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의 마음을 넘실거리며 세상을 증오와 반목으로 뒤덮게 했다. 나라가 두 쪽 난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어미 아비, 형과 아우마저 서로의 삶을 부정이라도 하겠다는 듯 눈 흘기며 재동의 다른 판단을 갈망하고, 거짓이 사실로 진실이 허상으로 치부되는 일백열하루의 악몽을 모두가 겪어냈다. 그렇게 맞이한 결과는 분명 그 밤 우리 서로가 결론 낸 본디의 것이었겠지만 누군가는 희열하고 또 누군가에겐 절망을 안기고 말았다.
사실도 너무 오래 부정되고 묵으면 악취 풍기는 거짓으로 감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젠 알았다. 엄혹했던 그 밤을 걱정하며 동료에게 군인들의 상식을 소망했듯 8명의 재판관도 모두의 소망에 화답하고 또 다른 굳건한 상식을 쌓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을 것으로 감히 짐작한다.
그럼에도, 어떤 지도자라도 자신의 부덕함을 해소하려 정치와 타협이 아닌 이전 세대에서나 쓰였을 유물스러운 국가긴급권을 자의로 꺼내 무기 삼을 수 없도록 원천적이고 완전하게 차단해주길 적어도 기대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계엄선포권 행사에 대통령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면서 피청구인 측 입장을 받아줬다. 그렇더라도 탄핵심판 절차에서 헌법 및 법률 위반 여부를 따질 수 있다고 했다. 계엄 선포행위가 대통령 통치행위이지만 사법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선에서 물러선 것으로 이해된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헌법 77조 3항을 고려한 결과로 추정한다.
다만 비상식적인 사고와 행동이었다고 해도 상대방의 잘못된 위협을 꾸짖고 지도자 위치의 무게감을 감안해 다독일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성공한 비상계엄이라는 발언도 산산이 부숴주길 소원했지만 ‘계엄선포권을 부여받은 대통령에게 일정 정도의 판단재량이 인정되지만, 객관적 위기상황이 존재해야 하고 판단이 현저하게 자의적인 경우 위헌·위법하다’는 29년 전 판례를 언급해 위헌·위법을 꼬집었을 뿐이다.
아무렇지 않게 평범했을 12월 그 밤을 오롯이 내어줄 수밖에 없었던 수천만 국민과 그 불편한 기억들을 앞으로 대한민국 역사로 받아들여야 할 후세들까지 헌재는 기꺼이 모두 보듬고 싶었을까. 오랜 협의 시간이 이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믿고 또 믿지만 한편으론 파면이란 명확한 결론과 달리 거기 도달하는 과정에 너무도 많은 시각과 목소리가 담긴 건 아닐지 억측해본다.
긴 고민의 결정문을 받아든 우린 며칠 새 또 갈라졌다.
재판관들이 이견을 전원 일치하기 위해 시간을 썼다는 것을 기준으로 다양한 시나리오가 흘러나왔다. 재판관 8명을 영웅으로 칭송하는 글과 영상이 떠돌고, 극우 유튜버 중엔 8명을 해코지할 작당에 여념이 없는 이도 있다. 헌재를 정쟁과 갈등의 상징으로 낙인찍고 대법원에 역할을 넘기자는 주장도 정치권에서 나왔다.
대통령이 구속된 날 법원에서 벌어진 난동보다 더한 사달을 걱정했지만 우리의 사월사일이 생각보단 평온했음에 너무 다행스럽다. 경찰이 헌재에 이중으로 차벽을 세우고 최대 병력을 보내 대비를 잘했을 수 있다. 법원 난동 사태를 엄중하게 다룬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입으론 상대를 깎아내리고 혐오하면서도 뇌와 심장은 그 밤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하려 한다. 소수가 한없이 나쁘고 비뚤어진 마음으로 작당한 그 밤의 끔찍함을 새기며 오랜 시간 자신들만의 결정문을 스스로 써내려갔던 건 아닐까. 모두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라 세뇌하고 싶다.
어느새 겨울은 가고 벚꽃 흩날리는 봄을 기어코 지나고 있다. 큰일 있을 줄 알았는데 평범한 하루하루라는 동료의 말에 별다를 게 있었겠냐며 너스레 놓을 수 있어 감사하다.
그간 모두 폭싹 속았수다. 이젠 자신들의 결정문을 꺼내들고 명료한 6월3일을 맞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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