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진영 갈등만 고조 시켜
비상계엄 이후 정치적 피로감
성숙한 민주질서로 회복해가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어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는 한국 정치 역사에서 초유의 사건으로, 불과 8년 만에 두 명의 대통령이 탄핵을 받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의 정치와 사회적 환경은 매우 역동적이게 변화하고 있지만, 이번 계엄과 탄핵 사건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결과로 평가된다.
약 3년 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 필자는 한 신문의 칼럼에서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 통합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새 대통령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 바 있다. 당시 칼럼에서는, 여소야대 국회,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절반의 국민, 극단적 대립 상황 속에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힘든 초반기를 보낼 것이라는 예측을 하며, 통합과 포용의 정치를 펼칠 기회를 가질 것을 강조했다. 거대 야당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윤 전 대통령에게는 통합과 포용의 정치를 실현할 계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임 동안 대통령의 행보는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인사와 정책 과정에서의 일방적 결정, 국민에게 거리감 있게 느껴지는 언행, 그리고 김건희 여사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 등은 반복적으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문제들은 국민 사이의 양극화를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증폭시키는 결과로 이어졌고, 사회 전반에 피로감을 안겼다.

윤석열정부 초기에는 독단적인 주장이나 특정 진영의 이익에 편중된 정책이 국회 다수당인 야당의 견제를 받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에 타협과 존중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윤 전 대통령 스스로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다’는 점을 언급하며 공정한 인사 원칙을 강조한 바 있으나, 실제 인사 과정에서는 그 원칙이 일관되게 지켜졌는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졌다. 김건희 여사의 인사 및 국정 관여 논란도 이러한 불신을 더욱 가중시켰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국회의 권한 행사가 절제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고, 일부는 권력 남용이나 국정 운영의 마비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그러나 헌재는 이러한 상황 역시 민주주의의 원리 안에서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보았다. 국회 다수당을 차지한 야당의 반복적인 탄핵 추진과 예산안 지연 처리 등은 분명 정치적 책임이 따르는 사안이지만,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오히려 대통령과 정부가 더욱 성숙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결국 국정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행정부와 여당이 먼저 조정과 설득의 리더십을 보여야 했으며, 갈등을 조율하는 책임도 더 크게 요구된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비상계엄령 발동이라는 과도한 대응을 시도하면서,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긴장을 고조시켰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당시 칼럼에서 강조했듯, 대통령은 모든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통합과 협치를 이끌어야 하며 초심을 잃지 않고 국민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책 추진에 앞서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국민 정서와 괴리되지 않도록 스스로 조율하는 모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윤 전 대통령이 정권 교체라는 시대적 요구 속에서 선택받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는 뿌리 깊은 갈등과 양극화를 완화할 중요한 기회를 가진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일관된 소통의 부재와 현실과 괴리된 리더십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했다.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갈등이 지속될수록 사회 전체의 피로감이 깊어지고, 결국 국민 개개인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정치권의 문제이자,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고립되고 단절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정치는 결국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영역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공존을 도모하는 기능이 회복되어야 한다. 이번 탄핵이 한 개인의 실패로만 남지 않고, 한국 정치가 성찰과 개선의 기회로 삼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나아가 모든 국민이 극단적 진영 논리에서 조금씩 벗어나,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는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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