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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칼한 동태탕·포슬한 냄비밥…가득한 사람 냄새는 '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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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19 12:00:00 수정 : 2025-04-17 01: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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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다섯 개 정도의 아담한 백반집
봄햇살과 어울려 시간도 느리게 흘러
보글보글 끓는 얼큰한 국물의 동태탕
냄비밥과 비벼 한술 뜨면 절로 미소가
냄비 바닥의 고소한 누룽지도 별미
빨간 양념 입은 제육볶음도 먹어봐야
 을씨년스러웠던 성수동의 기억을 되새겨 본다. 어머니와 함께 찾은 오래된 백반집 ‘엄마네 냄비밥’에서 만난 칼칼하고 진한 동태탕은 부드러운 동태살과 포근한 냄비밥, 그리고 고소한 누룽지까지 완벽하게 어우러져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따뜻한 한 끼로 남는다.
엄마네 냄비밥 한 상

◆성수동의 추억

스무 살에 처음 아르바이트를 한 곳은 지금은 사라진 성수동 이마트였다. 집에서 가는 교통편이 불편해 자전거로 출퇴근했는데 편도 40분 자전거 라이딩은 원치 않게 다이어트가 되는 효과까지 있었다. 20년 전의 성수동은 정말 을씨년스러웠다. 퇴근길 늦은 저녁, 공장들의 적막함은 지금의 성수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하지만 성수동은 수제화 거리가 뜨고 난 뒤 지금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강남, 강북 어디에서도 접근성이 좋아 지인들과 중간에서 만나자고 할 때 적절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시절 종종 갔던 뚝도시장 국밥집은 이제 청년들의 그라운드로 바뀐 지 오래다. 예전의 분위기를 기억하는 이들은 오히려 발길이 망설여지기도 한다. 어떤 공간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나도 그렇다.

그런 성수동을 참 오랜만에 찾았다.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반찬을 가져다 드리기 위해 어머니와 봄꽃 피는 동일로를 따라갔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드라이브는 추억 앨범을 펼치는 일이다. 성수동 길가에 있는 집을 가리키며 내가 두 살 때 살았던 집이라는 어머니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집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니. 웃으며 들려주는 어머니의 집 이야기들은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엄마네 냄비밥

성수동은 참 많이 변해 있었다. 거리마다 즐비한 카페, 음식점, 술집들은 이제 나이 든 나에게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분명 다름을 지향하며 창업했을 텐데, 비슷한 콘셉트의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엔 아쉬움마저 든다.

식사 시간이 다가와 아버지가 자주 간다는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면 손님들로 붐빈다며 자랑하시는 아버지의 말에 웃으며 찾은 곳은 ‘엄마네 냄비밥’이다. 15년 정도 된 오래된 백반집으로, 성수동의 세련된 가게들과 달리 사람 냄새 가득한 외관은 지나던 사람도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 가게는 테이블 다섯 개 정도의 아담한 크기다. 북적거리던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가게 안에는 단골로 보이는 손님 몇 명만이 앉아 땅콩을 곁들여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봄 햇살과 나른한 라디오 소리가 어우러진 이 공간은 시간마저 느리게 흐르게 만들었다.

냄비밥 누룽지

◆엄마네 냄비밥과 동태탕

자리에 앉아 동태탕을 주문했다. 이곳 동태탕은 한여름엔 판매하지 않는 계절 메뉴이자, 목요일에만 제공되는 특별 메뉴다. 늘 그렇듯 주문 후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반찬이 하나씩 차려지고 곧 보글보글 끓는 동태탕이 나왔다. 빨갛고 얼큰한 국물, 버너 위에서 한 번 더 끓이며 퍼지는 달큰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부드럽게 녹아드는 동태살을 한 점 집어 먹자 입 안에서 감칠맛이 퍼진다. 뒤이어 양은냄비 가득 담긴 밥이 나온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냄비밥이다. 포근한 흰쌀밥을 각자의 그릇에 덜어내면 냄비 바닥엔 고소한 누룽지가 얇게 붙어 있다. 혼자 온 손님에겐 밥공기에 따로 담아 제공된다.

동태탕

동태탕 국물을 떠서 밥에 비벼 보았다. 칼칼한 국물이 밥알에 스며들며 만들어내는 달큰한 맛은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다. 동태살을 얹어 먹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국물을 머금은 두부도 별미다. 엄마네 냄비밥의 동태탕은 칼칼하면서도 깊은 진한 맛이 특징이다. 끓이면서 자작해진 소스는 포장해 가고 싶을 정도로 농밀하다. 추가로 시킨 제육볶음도 준수한 맛. 파스타처럼 소스를 걸쭉하게 몽테(monter)한 듯, 간간하면서도 입맛을 돋운다. 제육볶음은 엄마네 냄비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다. 바쁜 회사원들에게 소복이 쌓인 냄비밥과 반짝거리는 빨간 양념옷을 입은 제육볶음은 상상만으로도 고된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원동력 아닐까 싶다. 식사를 마칠 즈음 냄비밥의 누룽지에 물을 부어 한소끔 끓여준다. 매콤한 양념으로 뜨거워진 속을 한순간에 포근하게 감싸주는 누룽지는 그야말로 한 끼의 따뜻한 마무리다.

◆동태와 동태탕

동태는 얼린 명태를 뜻한다. 명태는 북태평양에서 잡히는 대구과 생선으로,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돼 왔다. 동태는 생태에 비해 조직이 부드럽고 수분이 빠져 육질이 단단하다. 주로 탕, 조림, 찜 등에 활용된다. 조선시대부터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던 명태는 겨울철 얼려 저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동태’라는 이름이 붙었다. 냉동 기술의 발달로 동태탕은 대중화됐고 각 지역별로 특징 있는 국물 맛이 발전했다. 서울은 고춧가루와 마늘로 얼큰한 맛을 내고 부산은 시래기나 미나리를 넣어 향긋함을 더한다.

 

뷔야베스

◆동태 뷔야베스 만들기

<재료> 동태 300g, 새우 3마리, 오징어 200g, 홍합 5개, 모시조개 5개, 화이트와인 100㎖, 다진 양파 30g, 다진 마늘 30g, 토마토소스 150g, 건바질 10㎖, 버터 30g, 블랙 올리브 10g, 소금·후추 약간, 물 100㎖

<만드는 법> ① 냄비에 버터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양파를 볶는다. ② 향이 올라오면 동태, 새우, 오징어, 홍합, 모시조개를 넣고 볶은 뒤 화이트 와인을 넣어 졸인다. ③ 와인이 졸아들면 물, 토마토소스, 건바질, 올리브를 넣고 10분간 끓여 접시에 담아준다.

 

김동기 다이닝 주연 오너셰프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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