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는 생명을 다루는 숭고한 행위지만, 때로는 예기치 않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안타까운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 사회는 종종 의료진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력히 요구한다. 물론 중대한 과실에는 합당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모든 의료과실을 형사법정에 세우는 것이 최선일까?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의료과실의 형사사건 비화 확률이 현저히 높다. 이는 의료진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을 주며, 특히 위험 부담이 큰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기피 현상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대학병원에서 신생아 사망사건 후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이 급감한 사례는 비록 최종 무죄 판결이 났음에도 형사절차 자체가 의료 현장에 미치는 파급력을 보여준다. 결국 필수의료 공백은 국민건강의 위협으로 돌아온다.
반대로 환자 역시 의료사고 발생 시 정보 비대칭과 어려운 입증 책임, 기나긴 소송 과정에 따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필자는 몇년 전만 해도 관련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1심만 2~3년 걸린다고 설명했지만, 점점 길어져 이제는 4~5년으로 안내해야 할지 고민할 정도다. 환자가 원하는 것은 진실 규명과 신속하고 공정한 피해 구제다. 다만 그 해결방법이 형사처벌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은 중과실만 형사처벌하고, 미국은 대부분 민사로 해결하며, 일본 역시 한국보다 형사처벌 빈도가 낮고 재발 방지에 집중한다.
이제 우리도 중과실과 경과실의 처리 방향을 명확히 할 때다. 중과실은 엄정히 책임을 묻되, 통상적 진료 중 발생한 경과실까지 형사처벌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신중히 해야 한다.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했더라도, 의료행위의 특수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현행 의료분쟁조정중재원(중재원)의 조정·중재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재원의 전문적 감정을 통해 과실 여부와 정도를 판단하고, 경과실로 판단되고 의료인이 조정안을 수용하면 형사처벌을 면제하자는 것이다. 이는 현행법상 업무상과실치상죄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를 보다 실효성 있게 확대하는 방향이다. 물론 환자는 조정 결과에 불복 시 민사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유지해야 하지만, 이때도 형사처벌은 면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형사처벌은 면제하더라도 의료행위를 계속하도록 하는 것에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면허정지나 취소 등의 조치도 할 수 있는 제도 도입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도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특히 경과실로 인한 사망사건까지 면책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은 법 감정과 평등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과 위헌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경과실과 중과실의 명확한 구분 기준 마련도 쉽지 않은 과제다. 배·보상을 위한 재원 마련과 보험료 부담 주체도 고민할 문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의 핵심은 소모적인 법적 공방 대신 신속하고 공정한 피해 구제와 재발 방지에 집중하자는 데 있다.
이들 대안을 통해 환자에게는 긴 소송 없이 실질적인 배상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고, 의료인에게는 안정적인 진료 환경을 보장하면서 조정·중재에 협조할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 이로써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 의료진과 환자가 서로 신뢰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치료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그것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김경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soo.kim@baru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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