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가리지 않고 ‘카더라’ 유통
이젠 권력의 한복판까지 진입
거짓에 마음이 움직여선 안 돼
얼마 전 헌법재판소 인근 순댓국 식당, 60대 남자 두 사람이 순댓국과 막걸리 한 통을 앞에 놓고 사는 이야기를 한다. 친구들 소식을 교환하더니, 자신들이 자란 고향 산이 지난번 대규모 산불로 불탔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중국 사람이 불을 냈다는 얘기가 있더라”라고 했다. 방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유튜브에 나왔다니까∼”라고 했다. 중국인 산불 방화 음모론, 물론 사실무근이다.
그들 바로 옆에 나는 앉아 있었다. 중국인 산불 방화 음모론을 듣는 순간 며칠 전 헌재 인근을 지나다가 접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중국이 한국 선거에 개입했다는 음모론이 활개 치고 있는 현장이었다. 탄핵 반대 시위대 한 사람이 10m 떨어져 있는 탄핵 찬성 시위대 한 사람을 가리키며 “저 새끼는 중국인이에요. 조선족!”이라고 말했다. 상대방은 딱히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듣자 ‘중국 동포가 왜 시위 현장에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지인인 미국 동포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두 달 전인가 한국에 왔을 때 여의도 탄핵 찬성 시위에 다녀왔다며 동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재미교포가 시위한다면, 재중동포가 시위하는 것도 뭐라고 할 수 없겠네, 라고 나는 생각의 균형점을 찾았다.

“조선족” 갈등 현장을 지나 헌재가 지척인 안국동 사거리로 갔다. 당시 헌재는 탄핵 선고를 앞두고 있어 인근이 시위와 집회로 요란했다. 특히 “시진핑 ×새끼”라고 메가폰을 붙잡고 욕하는 30대 여성은 끔찍했다.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넘어 밝은 대낮에 길거리에서 중국 지도자를 육두문자를 써서 욕하고 있었다.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구역질이 났다.
한반도 동남쪽을 쑥대밭으로 만든 산불 연기는 가라앉았지만, 한국인 마음속에는 음모론이라는 대형 산불이 계속 불타고 있다. 그리고 이 시대를 규정하는 음모론은 단연 중국 관련 음모론이다. ‘차이나 게이트 음모론’이라는 키워드가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에 등재될 정도다. 사람들은 왜 음모론에 빠져드는 것일까? 그들은 이상한 사람들인가?
음모론을 연구해온 마이클 셔머라는 미국인이 있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음모론이란 무엇인가’ 저서가 한국에도 소개되어 있다. 셔머에 따르면 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똑똑한 사람들인데, 뻔히 틀린 걸 믿을 뿐이다. “음모론은 외부 위협을 감지하기 위해 진화된 적응이며, 사람의 본성에 내재해 있다.”
음모론은 특히 ‘인지 부조화’라는 땔감이 있으면 활활 타오른다. 인지 부조화는 기존 생각과 반대되는 정보를 접했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인 불편감이다. 세계는 크고 복잡하니,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는 건 어렵다. 우리 머리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기존의 지식 체계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나 이해할 수 없다. 이때 음모론이 똬리를 틀며, 인지 부조화를 해결해준다.
9·11 테러가 미국 정부 자작극이라는 음모론, 다이애나 빈의 교통사고 사망 배후에 영국 정보기관이 있다는 음모론이 이런 맥락이다. 미국 정부라는 강력한 시스템이 있는데, 어떻게 한 줌 안 되는 외국인이 뉴욕 맨해튼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비행기를 충돌시키는 일을 저지를 수 있나? 또 다이애나 빈과 같은 사람이 보통 사람처럼 교통사고로 죽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음모론이 뒷골목에서 돌아다니는 데 그치는 게 아니고, 권력의 한복판에 진입했다는 게 이 시대의 특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그 이유가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을 피워 올렸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유통되고 있다. 또 음모론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대표적인 우파의 음모론은 기후변화 음모론이고, 좌파 음모론은 유전자변형식품(GMO) 음모론이라고 얘기한다.
음모론 퇴치는 어떻게 할 수 있나? 치유가 쉽지 않다. 그걸 부정하는 증거가 차고 넘쳐도 특정 음모론에 빠진 사람은 그걸 부인하고,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를 편향적으로 받아들인다. 거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 마음의 버그는 치유를 거부한다. 버그에 마음이 갉아먹힌 사람이 많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서울 안국동 밥집에서 친구로부터 중국인 산불 방화 음모론을 듣고도, 그 말에 마음을 내주지 않은 다른 친구와 같은 사람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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