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파가 학생들 살해” 주장한 블로거
법원 “표현의 자유 인정” 손배訴 기각
사전투표 조작설 전파도 고법서 “무죄”
수사기관은 허위사실 적극 대응 추세
부정선거론자 이모(70)씨는 2020년 4월15일 국회의원 선거 당시 경기도 구리체육관에 보관 중인 투표용지 6장을 훔쳐 부정선거를 주장한 민경욱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 이 투표용지는 민 전 의원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퍼뜨리는 근거가 됐다.

공직선거법 위반과 야간방실침입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씨는 2020년 12월 의정부지법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이 침해한 것은 선거의 공정성, 그리고 그것으로 뒷받침돼야 할 공권력에 대한 신뢰, 자유민주주의 제도 그 자체”라고 꼬집었다. 이씨가 부추긴 부정선거론이 우리 정치 현실을 극단주의와 혐오주의의 장으로 인도했다는 지적이다.
법원은 “이와 같은 범행을 방치할 경우 가짜뉴스나 음모론의 양산, 포퓰리즘 정치인의 득세, 자유민주주의 제도의 붕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엄정한 사법적 대응을 통해 피고인의 죄책을 묻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려 일반 예방효과를 꾀해 앞서 지적한 정치·사회적 법익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음모론은 사회 전체로 확산해 갈등과 폭력사태까지 이어질 수 있지만 이를 퍼뜨리는 자에 대한 처벌은 대부분 솜방망이에 그친다. 음모론을 입증하기 어렵고 이를 처벌하기 위한 근거나 장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직접적인 피해를 본 자가 있어야만 손해배상이나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이 이뤄지는 수준이다.
16일 세계일보가 2014년 2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음모론’이란 단어가 포함된 판결문 43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 중 12건(28%)은 손해배상 청구였다. 음모론으로 피해를 본 자가 고소·고발로 문제를 제기한 경우다. 이 중 8건의 손해배상만이 인정됐는데 평균 1925만원의 피해 청구가 이뤄졌다. 나머지 4건은 피해가 인정되지 않아 기각됐다.
세월호 고의침몰설을 주장한 A블로그는 2014년 5월3일부터 2018년 12월16일까지 13회에 걸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구원파가 고의로 세월호를 침몰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블로그는 “(이들이) 인신공양으로 단원고 학생들을 살해했다”며 “세월호 전 선장과 승무원 전원이 구원파 신도”라는 음모론을 펼쳤다. 구원파 측이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면서 결국 기각됐다.

‘음모론’ 43건 중 9건은 명예훼손으로 기소됐는데 이 중 2건은 무죄, 5건은 벌금형에 그쳤다. 6건은 공직선거법 위반, 4건은 모욕 혐의로 기소된 건이었다. 공직선거법 위반 건에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비롯해 선거 과정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우 등이 포함됐다.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한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위원은 정부와 군 관계자 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2016년 1심에서 “허위사실을 적시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2022년 6월 대법원은 “비방 목적으로 볼 수 없다”고 무죄를 확정했다.
영상과 책자 등을 통해 사전투표 조작설을 전파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B씨 역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등법원은 2022년 6월 B씨가 주장했던 “사전투표용지의 QR코드가 일련번호가 아닌 무작위 번호가 부여되고 있다”, “사전투표함의 규격과 재질이 법에 위배돼 쉽게 훼손될 수 있다” 등에 대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도 “선거의 자유를 방해한 것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수사기관은 온라인상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추세다. 온라인상 허위사실로 인한 각종 피해가 늘고 있고, 이에 동조하는 댓글까지 폭넓은 수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상 허위사실 유포 사건의 발생 건수는 2020년 9140건, 2021년 1만1354건, 2022년 1만2370건, 2023년 1만1706건, 2024년 1만1961건으로 1만건 안팎을 오갔다. 반면 검거 건수는 2020년 6381건에서 2021년 7644건, 2022년 7964건, 2023년 9248건, 2024년 1만23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양 의원은 지난달 25일 허위사실 유포나 조작된 정보를 이용해 내란·폭동·테러를 선동하는 콘텐츠를 불법정보로 규정하고 이를 통한 수익창출을 막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양 의원은 “음모론과 허위정보는 더 이상 단순한 여론 조작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라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거짓 정보 유통에 대해 엄정한 대응과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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