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준형이 아빠의 고백
어뢰 격침설·외부 배후설 등 소문 무성
실체적 원인 파헤친 뒤에야 의혹 풀어
“거짓 바로잡으려면 엄청난 시간 걸려”
전문가들 ‘공동선 준수’ 제언
진영에 매몰 ‘정치적 부족주의’ 등 문제
팩트체크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현실
‘유튜브 특별법’ 제정 등 적극 대응 필요 하>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기까지 걸린 수년의 시간, 그 사이 무너진 믿음.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분열과 갈등이 만들어 낸 ‘음모론’이었다. 대형 참사를 겪은 희생자와 그 유족들은 음모론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2014년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도 숱한 음모론을 양산해냈다. 그 음모론을 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은 오롯이 희생자와 유가족의 몫이었다. 끝없는 음모와 갈등 속에 이들은 또 다른 2차 가해의 대상이 됐다. 11년이 지난 지금 그들에게 참사와 함께 따라온 음모론은 어떤 상흔으로 남았는지, 고 장준형(당시 18세)군의 아버지 장훈(54)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의문이 키운 음모론
장씨는 참사가 발생하고 2주가 지나서야 아들의 시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 밀려왔고, 사고를 납득할 수조차 없었다. “어떻게 거대한 배가 속절없이 기울어 가라앉았을까.” 이런 물음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참사 희생자들의 유족 모임에서 진상규명분과장을 맡았던 장씨는 당시 여러 제보를 받았다. 세월호가 인양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증되지 않은 음모론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사고 원인을 두고 세운 여러 가설은 저마다의 고통과 좌절의 감정이 더해져 음모론의 견고한 기둥을 세웠다.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이 탄 여객선에 어뢰를 쏴 격침했다는 의혹부터 잠수함 침몰설, 외부세력 배후설 등 근거없는 주장들이 쏟아졌다. 장씨는 “이런 허황된 음모론이 터져 나온 것은 당시 희생자 유족들이 기댈 곳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떠올렸다.
정부의 태도 역시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당시 정부는 참사가 “모두의 책임”이라고 밝혔고, 집권당에선 ‘세월호 교통사고론’을 언급하며 정부를 비호했다. 경찰은 추모 집회에서 희생자 유족들에게 물대포를 퍼부었다. 국군 방첩사령부의 전신인 국군기무사령부로부터 개인적인 사찰을 받은 유족도 있었다. “우리는 피해자일 뿐인데, ‘왜 탄압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다면 거대한 음모가 숨은 게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뒤따랐어요. 책임을 회피하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고, 거짓말을 하면 음모론이 생기는 겁니다.”
11년이 지난 지금, 음모론은 희생자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일부 유가족들은 여전히 음모론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장씨는 “음모론은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가슴을 또다시 후벼 파는 것”이라면서 “그것이 꺼지지 않고 틈날 때마다 불거질 경우 유가족 입장에선 계속 상처를 더한다. 음모론끼리 합쳐져 소설처럼 부풀면 그 상처는 더 커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의혹보다 실체에 접근해야
장씨가 사고 원인에 대한 실체에 다가서고 그것을 결과로 받아들인 뒤에야 음모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참사가 발생하고 4년이 지난 2018년 7월 장씨는 네덜란드의 해양사고 조사업체 ‘마린’을 찾았다. 대형 수조에서 세월호 모형배를 띄우고 줄로 잡아당겨 쓰러뜨리기를 수백번 반복했다. 얼마나 외부에서 힘이 작용해야 배가 세월호와 동일하게 전복되는지 알아보는 ‘외력설 실험’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마린의 총괄 매니저 헹크 반덴붐은 “당신들 조금 잘못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배는 외부의 충격이 있어도 애초에 쓰러지지 않는다”면서 “넘어가면 욕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간 장씨가 여러 전문가로부터 듣지 못했던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답이었다. 애당초 쓰러져선 안 되는 배가 항해 중 쓰러진 자체가 문제였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과적된 화물과 고박 불량, 기계 결함, 조타 미숙, 대피 지시 미흡과 같은 재난의 요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순간 무너진 것이다. 장씨는 “당시 그 이야기를 듣고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고 떠올렸다.
장씨는 자신이 음모론에 빠져든 이유를 ‘피해자의 절박함, 무분별한 정보와 주장의 난립, 정부의 책임 회피, 왜곡된 비난과 탄압’ 등으로 설명했다. “당시에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쉽게 설명을 하지 않았어요. ‘배는 애초에 쓰러지면 안 된다’ 같은 사실이요. 토론회에서 만난 교수들에게 따진 적이 있었는데, ‘너무 당연해서 그랬다’는 답만 돌아왔어요.”
가장 큰 문제는 음모론이 누군가에게는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점이었다.
장씨는 “당시에도 특정 단체와 유튜버들이 이익을 얻기 때문에 음모론을 생산하고 유통했다”면서 “그렇게 근거없는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음모론에 빠져 있다.
장씨는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바뀐 게 없다”며 “오히려 개인 미디어가 많아지면서 음모론이 더 활개 치는 것 같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는 “사회 전반적으로도 불신의 기류가 이어지면서 음모론도 폭발하는 듯하다”며 “사람들이 각박해지면 웃어넘길 일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장씨는 독일 나치 시대 선동가인 요제프 괴벨스의 말을 인용했다.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된다.’ 이게 진짜처럼 들리게 되는 겁니다. 마치 진실이 된 거짓에 맞서 싸워 바로잡기 위해선 또 엄청난 시간이 걸리게 되죠.”

◆“최소 공동선 지켜야”
전문가들은 장씨 같은 음모론 피해자를 더 낳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최소한의 ‘공동선(共同善)’을 지켜야 한다고 제언한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공동체 차원에서 최소 공동선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헌법을 침해하는 행위와 생각은 배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정치인들은 언어와 감정을 분리해야 한다”며 “감정적으로 말을 뱉으면서 선동을 일삼아 지지자들의 행동을 일으키게 된다. 진영에 매몰되는 ‘정치적 부족주의’에 빠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음모론의 시대’를 쓴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도 “음모론은 단지 인지적 측면을 겨냥한 팩트체크(사실 확인)로는 해소될 수 없다”면서 “음모론이 결과적으로 건강을 해치고, 이웃을 죽이고, 한 국가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파장을 이야기로 풀어야 감정적 설득력도 얻는다. 미디어와 정치권, 지식인들이 이를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음모론의 유통 창구가 된 유튜브에 대한 제도적 감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유현재 서강대 교수(신문방송학)는 “한국은 유튜브 이용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유튜브 특별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음모론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가 많은 에너지를 쏟아서 막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음모론을 초기에 감시하고, 수익 정지 및 처벌 등 조처를 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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