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이 임명권 있다고 단정 못 해”
본안 심판 일정 밝혀 혼란 줄여야

헌법재판소가 어제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9명 만장일치로 인용했다. 지난 8일 한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지 8일 만이다. 이로써 한 권한대행의 재판관 지명 및 임명 절차는 본안 판단이 나올 때까지 중단된다. 문·이 재판관 후임은 차기 대통령이 다시 지명하게 될 전망이다. 법조계와 학계의 우려에도 후보자 지명을 강행한 한 권한대행은 정치적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핵심 쟁점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재판관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였다. 헌재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가 재판관을 지명·임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한 권한대행이 재판관을 지명·임명한다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자격과 절차’에 의해 임명된 ‘재판관’이 아닌 사람에 의해 재판을 받게 돼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헌법 27조)’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가처분 신청의 본안 사건이 명백히 부적법하거나 이유 없다고 단정할 수 없고, 효력을 정지해 손해를 방지할 긴급할 필요성도 있다고 본 것이다. 가처분을 인용한 뒤 헌법소원 청구가 기각되었을 때 발생하게 될 불이익보다 가처분을 기각한 뒤 청구가 인용되었을 때 발생하게 될 불이익이 더 크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헌법 수호의 책무가 있는 대통령의 대행이 헌법기관의 파행을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대통령 궐위 상태에서 권한대행의 인사권 행사는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정당한 권한 행사조차 정치적 해석에 따라 제약될 수 있다는 위험한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보 성향인 마은혁 재판관이 주심을 맡았다는 점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재판관 9명이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공방으로 키우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국무총리실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본안의 종국 결정 선고를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한 총리는 당장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라”는 공세를 취했다. 이 사안은 정치적 공방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법의 문제인 만큼 차분하게 기다리고, 헌재는 본안 심판 일정을 공개해 혼란을 줄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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