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대통령 임기 끝났으나 선거 없어
정적들 “국가 방어 이외 목적으로 계엄 활용”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계엄령이 오는 8월 초까지로 90일 연장됐다. 미국의 종전 요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자 교전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선제적 조치를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계엄령 하에서는 선거가 불가능한 만큼 이미 임기가 끝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후임자를 뽑기 위한 대선도 이르면 9∼10월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16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의회는 젤렌스키가 제출한 계엄령 및 동원령 연장안을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오는 5월9일 종료할 예정이었던 계엄령과 동원령은 8월6일까지 90일간 더 연장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이 전면 침공을 단행한 2022년 2월24일 계엄령이 선포된 이래 계속 유지되고 있다. 함께 선포된 동원령은 군대에서 싸울 병사 징집을 위한 것으로,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징병 대상인 18∼60세 남성의 출국을 금지하고 있다.
1978년 1월생으로 현재 47세인 젤렌스키는 2019년 5년 임기의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해 5월20일 취임한 젤렌스키는 2024년 5월19일 임기가 끝났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인해 계엄령이 선포돼 있고 계엄령 하에서는 선거 실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임기 만료 이후로도 1년 가까이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현 우크라이나 정부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대통령 자격이 없는 젤렌스키와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젤렌스키를 겨냥해 “선거를 치르지 않은 독재자”라고 부르며 맹비난했다. 트럼프는 특히 젤렌스키가 러시아에 양보하는 내용의 종전 협정에 거부감을 드러내자 “그(젤렌스키)는 선거를 거부하고 우크라이나 여론조사에서 매우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며 “(협상을) 서두르지 않으면 나라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젤렌스키도 이 같은 상황을 무척 난처하게 여긴 모양이다.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로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종전 협상에 속도가 붙는 듯하자 젤렌스키는 전면적 휴전이 이뤄진다는 전제 아래 계엄령을 해제하고 대선을 실시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영국 언론은 지난 3월 “젤렌스키가 정부에 대선 준비를 지시했으며 이르면 7월쯤 선거 실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종전 협상에 진전이 없고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은 계속되자 결국 계엄령 연장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야당인 ‘유럽연대’ 지도자이자 젤렌스키의 정적으로 꼽히는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2014∼2019년 재임)은 계엄령 연장 소식에 발끈했다. 포로셴코는 “현재 시행 중인 계엄령이 만료되기까지 아직 1개월 가까이 남았는데도 정부가 서둘러 계엄 연장안의 의회 통과를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계엄령이 러시아로부터 국가를 방어할 목적뿐만이 아니라 (젤렌스키에 의한) 권위주의 정권 수립에도 쓰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9년 대선 당시 젤렌스키에 지면서 연임에 실패한 포로셴코는 퇴임 후 부정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이웃나라 폴란드로 망명하는 등 젤렌스키와는 악연이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 스스로 귀국해 야당 지도자로서 젤렌스키의 전쟁 수행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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