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신체에 얽힌 이야기 수집
삶·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시선들
혐오와 숭배 등 사회문화적 분석
암시장 ‘레드마켓’ 등 욕망 개탄도
고흐의 귀, 퀴리의 골수/ 수지 에지/ 이미정 옮김/ 타인의 사유/ 2만2000원
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저자는 반 고흐의 귀, 마리 퀴리의 골수, 아인슈타인의 뇌, 소크라테스의 머리뼈, 나폴레옹의 음경 등 역사 속 인물의 신체 부위에 얽힌 놀라운 이야기를 수집해 소개한다. 유명인의 신체적 특징이나 질병, 사후에 일어난 신체 부위 도난 사건 추적을 통해 인간의 혐오와 숭배의 시선, 욕망 등을 사회문화적으로 분석했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왜 귀를 잘랐을까? 1888년 12월, 프랑스 아를에서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귀를 일부 절단했다. 귀를 붕대로 감싼 채, 잘린 귀를 신문지에 싸서 근처의 매춘업소에 있는 여성에게 건넸다. 그가 왜 귀를 잘랐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정신질환에 의한 충동성 행동으로 추정된다. 그는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귀 절단은 그의 삶에서 유명하고도 미스터리한 사건이다. ‘고흐의 귀’ 는 오늘날까지도 예술가의 고통, 정신 질환, 창조성과 광기 사이의 경계를 상징하는 일화로 인용된다.
마리 퀴리(1867∼1934)는 인류를 위한 방사능 연구에 자신의 ‘골수’를 내 준 인물로 평가된다. 퀴리는 방사능 연구의 선구자로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했고, 방사능이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방사선 치료의 길을 열었고, 현대 암 치료의 기반을 닦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방사능의 위험성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퀴리는 오랜 시간 동안 방사성 물질을 보호 장비 없이 직접 다루었다. 그 귀중한 원소를 찾으려고 방사능이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을 모른 채, 연구 도중 손으로 직접 시료를 만지기도 하고, 방사성 물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했다 그 결과, 그녀는 만성적인 피로와 백혈병 등 방사선 노출과 관련된 질병으로 고생하다 재생불량성 빈혈로 숨졌다. 퀴리가 ‘아름다운 라듐’이라 불렀던 물질이 퀴리의 세포를 파괴하기 시작하면서 퀴리의 골수는 전 세계에서 살아남은 수많은 생명 대신 그 대가를 치렀다.

1955년 4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76세로 사망했다. 그러나 그는 ‘천재의 뇌는 과연 무엇이 다른지’를 궁금해한 의학자들에 의해 수난을 겪는다. 당시 그의 시신은 뉴저지의 한 병원에서 부검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당직 병리학자 토마스 스톨츠 하비가 아인슈타인의 뇌를 꺼내어 연구 목적으로 보관한다. 하비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240개 조각으로 절단한 뒤 현미경 슬라이드로 제작했고, 일부는 연구 목적으로 다른 과학자들에게 보내졌다. 그의 뇌가 보통 사람의 뇌와 다른지, 크기가 보통 뇌와 다른지, 대뇌피질에 혹시 ‘천재가 되는 길’ 이라도 적힌 것이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는 것. 하지만, 연구 결과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천재의 뇌’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내용은 아직 없다. 의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천재성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혹은 일반인과의 특별한 차이점을 찾기 위해, 그 비밀을 소유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의 뇌를 해부한 것이다.

18, 19세기까지 유럽의 부유층은 이국땅을 여행하면서 원주민의 유해를 보물이나 골동품처럼 수집했고, 원주민의 신체 부위는 전 세계로 운반됐다. 마치 사냥감의 머리를 웅장한 저택의 벽에 걸어두듯이 원주민의 유해를 진열장에 전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호텐토트의 비너스’로 알려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 출신의 코이코이족 여성 사라 바트만의 이야기다. 바트만은 엉덩이에 다량의 지방이 쌓이는 둔부지방경화증을 보였는데, 바트만의 종족에서는 흔한 증상이었지만 유럽인들은 이를 조롱하고 희화화하며 구경거리로 삼았다. 1815년 바트만이 사망했을 때까지 학대는 계속됐고 그녀의 뇌와 뼈, 성기가 파리의 한 박물관에서 보존· 전시되기까지 했다. 그녀의 큰 엉덩이 때문에 성적 대상화되며 “기형적이고 야만적인 흑인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도구로 이용됐다.

저자는 머리에서 발가락까지 인간의 신체 부위를 향한 욕망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오고 있다고 말한다. 요즘은 전시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신체 부위를 파내지 않지만, 비윤리적이고 심각한 문제들이 여전하다. 저자는 뼈 거래상과 혈액 농장주, 장기 매매자는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고 신체 부위를 사고팔며, 인체 매매 암시장인 ‘레드마켓’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횡행한다고 개탄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