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1959년 美서 연구로 첫 도입
1980~1990년대 자력 연구로 건설
2009년 그리스에 기술 수출 시작
15년간 사업 수주 이어오다 ‘쾌거’
정부, 시장 확대 예상 지원 등 강화
“‘민감국가’에도 한·미 협력 원활”
1959년 미국 원자로를 들여오며 시작된 한국 원자력 기술이 종주국 미국에 역수출되는 쾌거를 이뤘다. 최근 15년간 꾸준히 해외 연구용 원자로(연구로) 사업을 수주해온 한국은 이번 수주를 계기로 연구로 수출 선도국으로 발돋움할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1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현대엔지니어링, 미국 MPR사 컨소시엄은 미국 미주리대가 국제 경쟁입찰한 ‘차세대 연구로’ 설계 사업에 지난해 7월 최종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으며 이날 첫 단계인 초기설계 계약을 맺었다. 초기설계 다음 단계는 개념설계·기본설계와 건설 인허가, 서류 작성 등이다. 초기설계 규모는 1000만달러(약 142억원) 수준이며 단계가 올라갈수록 금액이 커진다. 미국 언론 등에 따르면 건설을 포함한 전체 사업 규모는 8~10년간 약 10억달러(1조4204억원)로 추정된다.

연구로는 핵분열 열로 증기를 만드는 발전용 원자로와 달리 핵분열에서 나오는 중성자를 이용하는 장치다. 중성자는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생산, 연구·개발 활용, 전력 반도체 소재 생산 등에 쓰인다.
이번 수출은 한국 원자력 기술이 세계적 수준임을 입증하는 성과로 평가된다. 기술을 지원해준 종주국에 66년 만에 역수출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한국 원자력 역사는 산업화와 궤를 같이 한다. 1959년 한국은 최초 연구용 원자로인 ‘트리가 마크-2’를 미국 제너럴아토믹으로부터 도입했다.
한국 원자력 기술의 성장기는 1980∼1990년대다. 한국은 1985∼1995년 자력으로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를 설계·건조·운영하는 데 성공했다. 하나로 운영을 기반으로 한 연구로 수출은 2009년부터 열매를 맺었다. 2009년 그리스의 5㎿급 원자로 성능 개선을 위한 설계 기술 수출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연구로 디지털 시스템 구축(2014년), 요르단 연구로 설계·건설(2017년), 방글라데시 연구로 디지털 시스템 구축(2024년), 네덜란드 델프트 연구로 냉중성자원 제작·설치(2024년) 등 수출 성과가 이어졌다. 2022년에는 15㎿급 수출형 신형 연구로도 착공했다.


정부는 향후 연구로 수출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고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연구로는 1기당 건설 비용이 2억~10억달러로 큰 편은 아니지만, 기존 연구로 227기 중 70% 이상(161기)이 40년 이상 돼 개선·교체 수요가 꾸준할 전망이다. 방사성의약품 생산에 필수인 동위원소 수요 증가도 연구로 시장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연구로 수출의 경제성·지속성 확보, 수출 생태계 조성, 국제 협력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창윤 과기부 1차관은 “이번 수출은 순수한 과학기술 성과뿐 아니라 한·미 기술동맹, 산업 경제적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며 “세계 연구로 수출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시점에서 이번 수주는 우리가 연구로 수출 선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청신호”라고 말했다. 과기부는 이번 수출이 최근 민감국가 지정 관련해서 한·미 협력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수출을 주도한 임인철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은 “이번에 계약을 맺은 초기설계 단계를 잘 수행해 개념설계와 기본설계 단계까지 끌고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