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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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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18 00:05:54 수정 : 2025-04-18 00: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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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은 작가의 발언이며, 그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작가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생각과 정서를 작품으로 담아내기에 그렇다. 이런 점이 특히 두드러진 작품이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다. 전 세계에 근대 시민사회로의 전환을 촉발시킨 역사적 사건은 프랑스대혁명이었다. 봉건 왕정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근대 시민사회를 만들어냈지만, 그 후에도 계속된 혁명과 18세기 말의 혼란이 이어졌다.

이런 시대의 혼란을 다비드는 어떻게 표현하려 했을까. 절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했던 고대 그리스 미술의 형식을 실현함으로써 예술뿐 아니라 사회까지도 정화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의 시도에 의해서 신고전주의 양식이 탄생했다.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1793)

신고전주의는 새로운 시민계급의 취향을 반영한 미술 양식이었다. 이성적 합리적 사고를 존중하고 절도와 규율을 강조하는 시민계급의 이상에 맞는 예술이었다. 다비드는 그 이상을 단순하고 절제된 미술작품으로 실현하려 했다.

‘마라의 죽음’은 그렇게 탄생했다. 다비드는 프랑스대혁명 후 국민의회의 지도자였던 로베스피에르의 친구였고, 혁명기의 예술 감독이었다. 이 그림은 그가 나라를 위해 죽은 영웅을 기리기 위해서 그린 것이다. 모두 6장을 그렸는데, 이 그림은 벨기에 왕립 미술관에 있고, 다른 그림이 파리의 루브르미술관에도 있다.

혁명의 지도자였고 민중의 친구로 불린 마라가 목욕 중에 암살당한 장면인데, 다비드가 마치 목욕하면서 잠든 것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묘사했다. 배경을 진한 갈색조로 단순하게 처리했고, 작가의 모든 감정을 배제하고 차갑고 냉정하게 나타내려 했다. 명확한 윤곽선과 조각적 입체감을 살리고 고통스러워하는 표정도 엄숙한 모습으로 절제 있게 표현했다.

힘들고 험난한 시대는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대처했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되어 왔다. 세계가 요동치고 있는 지금은 선동보다 이성적 설명과 판단이 앞서야 한다. 차분한 마음가짐과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때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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